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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Sep 20. 2023

초고 써보셨어요?

내 스토리텔링 만들기

6월 22일 초고를 쓰기 시작하여 9월 18일 마지막 40번째 꼭지를 완성했다. 3개월이 조금 안 걸렸다. 초고를 다 쓰고 난 후의 여운이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시지 않는다.  

"초고는 쓰레기"라고 한다지만 나는 이 쓰레기가 굉장히 소중하다. 앞으로 퇴고를 거쳐 문장이 다 쪼개지고 엎어지고 들어내기도 하겠지만, 현재 완성된 초고를 생각할 때마다 뿌듯하다.

에세이 타입의 글을 쓰느라 내 과거를 돌아봐야 했다. 잊혔던 기억을 찾아내느라 힘들었다. 떠올리기 싫은 경험을 꺼내어 진실의 눈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게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용감해져야 했다. 나 자신을 더 정확히 들여다봤다. 내가 과거에 무슨 감정이었는지, 어떤 생각이었는지. 글로 쓰려면 꽤 깊숙이 오래 봐야 했다. 그렇게 한 꼭지씩 채워 나갔다. 내 얘기로 40 꼭지를 채울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채웠다. A4용지로 약 90페이지 정도가 된다.

노년기, 퇴직 후에나 나의 과거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줄 알았다. 책 출간은 죽기 전 내 버킷리스트였다. 나는 지금 40대 초반에 책을 쓰고 있다. 계획보다 몇 십 년 당겨졌다. 100세 인생이라면, 아직 인생 후반전 시작 하지도 않은 나이다. 이 나이에 나를 돌아보고 글로 정리해 보니, 굉장히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초고 및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좋았던 점은,

1. '나'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누군가에게 간단하게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은 왜 이렇게 사는지 내 소개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할 수가 있게 된다. 얼마 전, 면담이 있었는데 나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야만 했다. 과거 나의 꿈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어떠한 일을 겪었고 현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까지 말했다. 내 머릿속으로도 대략 그림이 그려졌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 내가 초고를 쓰면서 내 이야기가 정리가 된 거구나!'

만약 초고를 안 썼다면 내 이야기도 횡설수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힘들었을 거다.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끄집어내는 과정이 내 인생의 스토리텔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어 준거다. 3개월의 글쓰기로 내 인생의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었다.


2. 정리되지 않은 감정 정리가 된다.

 꺼내보기 싫은 사건이 있다.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겁이 나서 애써 지우며 살던 기억들이다. 초고를 쓰기 위해서 마주해야만 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감정 정리가 된 사건들은 괜찮다. 그러나 미처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글로 적는 게 힘들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생각도 들었다. 시작은 힘들었으나 현시점에서 당시 상황을 다시 생각하고 글로 적으면서 또 다른 깨닫는 바가 생겼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도 글로 정리가 되었고 다시 머릿속에 차곡히 집어넣었다. 막연히 복잡했고, 상처가 되었던 일이 단순해졌고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3. 반복의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쳇바퀴 도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어떤 게 쳇바퀴인지, 어떤 게 실수 인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했다. 미래의 계획만 잘 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과거를 쭉 돌아보니 같은 패턴이 보였다. 좋은 결과를 내는 패턴이라면 상관없지만, 아쉬운 선택과 결과를 만드는 반복된 행동이 보였다. 과거를 통해 앞으로 인생에서 내가 주의해야 할 부분을 알게 되었다.


4.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초고 쓰는 동안 책도 많이 읽었다. 글을 쓰며 나를 돌아봤고 책을 읽으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했다. 나와 나 사이의 대화, 책이 주는 메시지를 다시 내 삶에 대입해 보며, 조금씩 나는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


김주환 작가의 <<내면소통>>에서는 '나'라는 개념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며 여러 구성요소로 이뤄진 복합체라고 한다. '나'라는 자의식을 '지속적인 스토리텔링 그 자체'로 본다. 즉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곧 '나'라는 자의식이다. 내가 하는 생각과 의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소통이고 '나'는 내가 하는 소통 그 자체다. 


글을 쓰면서 나와 내 일상, 생각과 행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초고 작업은 끊임없는 나와의 대화, 적당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나아갈 수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글을 쓰면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이다. 글을 쓰면 내 일상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생각과 글, 행동과 일상 속 일련의 노력이 곧 멋진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멋진 스토리텔링의 결과가 바로 내가 되는 거다. 


퇴고를 거친 후, 혹은 미래에 다시 지금 쓴 글을 본다면 이 글이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애 처음 초고를 마친 후의 느낌을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내 성취의 한 부분이며 인생에서 잊지 못할 3개월의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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