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행복을 찾는 지름길
당근과 채찍은 가축화 메커니즘의 핵심에 있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동료 인간에게 적용된 것이 바로 상과 벌 혹은 사랑의 방법과 폭력의 방법이니까요........(중략) 당근과 채찍이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채찍이 당근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해 폭력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강신주의 장자수업 1, p219~220)
가축에게 사용되던 '당근과 채찍'은 우리 삶에서도 만연하다. 특정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이미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상과 벌 제도에 길들여졌으니 말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부모와 교사가 잘하는 아이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아이에게는 벌을 준다. 이미 상과 벌에 익숙한 채로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새로운 사회 집단에 들어가 적응하고 살아남으려 기를 쓴다. 어른 사회 안에서도 '당근과 채찍'은 존재한다. 윗사람 입장에서는 집단을 편하게 통솔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이다. 가축화 메커니즘이 사람에 적용되었는데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감당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상벌을 휘두르는 지배자와 상벌을 따르는 피지배자의 관계가 성립되고 피지배자는 살아남기 위해 지배자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퇴직할 때까지 영원히 피지배자 마인드로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직장 생활도 해봤고, 내 사업도 해봤다.
사업을 하는 건지 파트타임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내 손에 쥐어진 돈이 극히 적을 때, 혹은 당장에 회사가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는 세상에 모든 직장인이 가장 부러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능력도 안되면서 내 사업을 시작했나 후회 많이 했다. 내 일을 한다는 건, 나를 방패막이해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험과 불안이 느껴지는 순간 남에게 종속되더라도 안전함을 느끼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칼과 방패가 되어야 한다. 길을 잘못 들어서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져도 붙잡아 줄 사람이 없다.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며 왔다. 13년간 내 일을 하면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나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는 거였다. 내 생각대로 행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내가 졌다. 돈을 잘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루하루를 만들어갈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꿈을 꾸고 또다시 나아가고 있다.
사업가든 직장인이든 마인드가 다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체가 되면 된다.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마음이면 된다. 사업가와 직장인이 힘들고 불행해질 때는 언제일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주인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 이익이고 그에 반하는 것은 손해라는 이해감각이 발생합니다. 인간도 상을 받고 벌을 면하기 위해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됩니다. 이해와 손해를 따지느라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주인이 원하는 것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맙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하는 것이 자유라면, 이제 그는 자유가 무엇인지도 헛갈리게 됩니다. (강신주의 장자수업, p221)
답은 나와 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걸 찾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면 된다. 같은 직장인이라도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하다. 윗사람의 마음에 든 직원이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직원이 불행할까? 사실 윗사람 마음에 들기 위해 내 자유를 빼앗긴 아니, 자유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속마음은 슬플지도 모른다. 사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거래처가 상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득하다면, 모든 생각과 태도는 거래처를 향하게 된다.
비록 작은 회사이지만 내가 주체가 되어 운영해 왔다. 돈을 좇고 남을 부러워하다가 이제는 진짜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은 먹고살 만큼만 벌면 감사하고, (물론 꽤 노력해야 가능하지만) 남은 삶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많이 하며 살고 싶다. 가끔 주위에서 당근과 채찍으로 사람 마음을 휘두르는 걸 본다. 그럴 때 거부감이 심하게 온다. 당근과 채찍은 가스라이팅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누군가 제시한 목표로 내 목표가 맞춰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내가 뭘 하면 좋을까?'가 아닌, '그 사람은 내가 뭘 하기를 바랄까?'의 마음이 든다면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할 타이밍이다. 그 사람이 만약 내 인생에서 사라질 때, 갈 길 없는 나그네처럼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려면 말이다.
아이 교육에서도 상과 벌 혹은 당근과 채찍으로 통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말에 가족이 모두 모여 명작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했다. 돌아가면서 질문을 던지는데, 8세와 6세 시선으로 묻는 질문은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 놀랐다. 내 질문에도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6살 어린아이를 보며 감탄했다. 누구의 생각도 옳거나 틀리지 않는다. 서로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다르다. 내가 주체가 되면, 비판적 사고도 가능해진다. 가축화 메커니즘에 쓰이는 당근과 채찍에 쉽게 휘둘리지 않게, 아이도 나도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살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해 본다. 그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 그림참조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