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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작가 Jul 30. 2024

언제나 함께 오름

리나 편


제주 다섯째 날.

일요일이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일어났다.

나는 주방 한쪽에 마련된 원두콩을 그라인더로 갈아 커피를 내렸다. 여유로웠고, 여유로웠다.

늘 그랬듯, 우리의 아침 메뉴인 견과류와 블루베리를 토핑한 요거트와 삶은 계란을 하나씩 먹었다.



새별오름

제주에서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 오름이었다. 오름은 매일 오르고 싶었지만, 다양한 곳을 가려다보니 쉽지 않았다.

숙소에서 가까우면서, 유명한 곳으로 고른 곳이 새별오름이다.

도착하니 주차장이 텅텅 비었다. 조용하게 오를 수 있겠다고 좋아한 순간 관광버스가 들어왔고, 60대 이상 단체 관광객이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오름의 왼쪽으로 올랐다. 블로그에서 누군가 왼쪽길이 가파르니 오른쪽으로 가라고 적었던 글이 생각났다.

'우린 오른쪽으로 오를까?'

마침 앞에 모자를 팔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왼쪽길을 추천해줬다. 현지인 전문가 말이 맞겠다 싶어서, 왼쪽으로 올랐다.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얼른 이들을 제치고 싶었다. 열심히 오르는데 경사가 가팔라서 숨이 금방 차올랐다. 결코 쉽지 않은 오르막길 덕분에 시끄러운 그분들과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레이첼과 나는 틈틈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정상까지 올랐다. 숨이 찰 만도 할텐데 갑자기 레이첼이 속도를 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먼저 저 만큼 올라가 나를 이리저리 찍어줬다.

새별오름은 들불축제로 유명해진 곳이다. 오름 전체에 불을 놓아 활활 태우는 그 광경을 상상해봤다.

레이첼은 남아공에서는 풀에 불을 놓아 태우는 일이 많다고 했다. 남아공에 처음 갔을때는 어디 크게 불이 난줄 알고 놀랐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줬다.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했다. 나는 그제야 모자 팔던 사장님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려가는 길이 가팔랐으면 더 위험했겠네. 역시 전문가의 말을 듣기를 잘했어."


숙소에 돌아가 씻고 다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소리튠 동료인 두 분의 코치님과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 며칠 전 내가 제주 카페 영상을 인스타에 올린 것을 보고, 제주에 사는 크리스 코치님이 댓글로 반가워하며 만나자고 밥 사주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제주에 올때부터 연락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반갑고 고마웠다. 제주에 얼마전 이사온 켈 코치님과 초등 딸까지, 다섯이서 만났다. 나는 전에 뵈었었지만 레이첼은 크리스 코치님과 오프라인으로 처음 대면했다.

어제 소리소문에서 미리 준비했던 블라인드 북을 두 코치님께 선물했다. 맛있는 영양밥을 얻어먹고, 다음 일정이 있어서 우리는 아쉽게 금방 헤어졌다.


오설록

제주에 오설록이 유명한데, 나는 지금껏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처음으로 가보는 곳이라 기대도 컸다. 유명한만큼 관광객이 어마어마했다.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 .

다행히 한쪽에 자리를 잡고, 녹차 아이스크림과 와플 오프레도, 그린티 롤케잌을 먹었다.

(오설록 기프티콘 보내준 레이첼 남편님께 감사)

삼각대를 설치하고 우리가 대화하는 영상을 찍었다. 언제고 이 영상들은 다 쓸데가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영상을 찍으며 우리의 앞으로의 계획을 잠깐 얘기했다.

제주오면 얘기하자고 했던 그 얘기.

5일이 지나서야 겨우 물꼬를 텄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진 못했다. 말한다고 모두 당장 할 수 있고 되는 건 아니니까.

매일 24시간을 며칠을 붙어 있고 끊임없이 대화를 해도, 놓칠 수 있는게 있고, 끝맺을 수 없는게 있다는 걸 여행 후 한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래도 괜찮다. 14,000km 떨어졌어도 부족한 것 채워가며 언제나 함께 오를테니까.

오설록 곳곳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우리의 추억을 남겼다.



저녁. 애월밤바다

레이첼. 남아공에서 사는 사람 맞나?

서치의 여왕이다.

내가 운전할때 레이첼은 다음 장소 물색을 하곤 했다. 검색을 어찌나 기가 막히게 잘 하는지, 좋은 장소를 빠르게 찾아냈다.

나는 나 스스로 여행 계획 잘 짠다고 생각했다. 검색하고 이동경로까지 세세하게 늘 내가 해왔다.

이번 제주에서는 숙소와 꼭 가야할 장소의 방향 설정만 해놓고, 일정 뒷부분은 거의 정해놓지 않았다. 그러한 틈을 모두 레이첼이 채웠다.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하나 고민했는데, 인당 4만원이면 모듬회코스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레이첼이 알아냈다.

식당에 들어가니 예약을 안해서 40분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어차피 온거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근데 웬걸. . . 바로 음식이 나왔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바닷가로 갔다. 밤바다 구경하며 소화시키기로 했다. 나란히 팔짱끼고 걸으며 이제 함께 여행할 날이 얼마남지 않음을 느꼈다. 다가올 아쉬움과 현재의 행복함을 동시에 느끼며 걸었다.

단 며칠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써니에게 영상으로 전화를 걸었다. 함께 못하는 아쉬움을 핸드폰 한 화면에 셋의 얼굴을 담는걸로 만족해야 했다.


부담없이 보낼 수 있는 주말이 끝났다.

우린 자기전 각자 공간에서 소리튠 코칭을 시작했다. 회원수가 적은 내가 먼저 일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벽 너머 레이첼의 코칭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첼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그 소리가 그리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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