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주는 축하선물
3년 동안 이어왔던 '세컨드 잡'을 내려놓았다.
나를 성장시켰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직업이다. 게다가 돈까지 벌었으니 일석 이조.
그러나 무엇이든 좋은 면만 가지고 있는 건 없는 법이다. 힘들고 아프고 견뎌야 하는 것들이 쌓여 멋진 작품을 완성하듯 말이다.
건강에 이상이 왔고 그럼에도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는데, 여러 차례 시그널이 들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달 동안 정말 많은 신호가 있었다. 세컨드 잡을 그만둬야 한다는 신호를 여러 번 외면했고 긍정 자아를 끌어올리기에 바빴다. 나를 향한 속삭임이, 터치의 방법으로, 다정한 메시지 그리고 강력한 한마디가 차근차근 나를 감싸고 있던 방어막을 하나씩 벗겨나갔다. 그리고 나는 결국 한 순간에 세컨드 잡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분석하고 다짐하고 심사숙고하는 게 아닌 단 한순간에 온몸과 마음과 머릿속이 하나가 되어 '그만둬야겠어.'라고 외쳤다. 그동안 여러 번 그만둘까 말까 고민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아니, 그만둘 용기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둘 마음이 없었던 것이었다. 마음이 명확해지면 결정도 쉬워진다.
세컨드 잡을 얻었을 때 또 하나의 세상을 살게 된 것 같아 기뻤다. 환영과 축하의 인사를 받으며 그곳에 발을 들였다. 3년 후 이제 그곳을 떠난다. 내 합격을 축하해 줬던 선배는 얼마 남아있지 않고 대부분 후배들이다.
내가 그만둔다는 것을 알게 된 동료들에게 하나 둘 연락이 왔다. 카톡도 오고 전화도 걸려왔다. 아쉬워했고 서운해했다. 속상한 마음, 울먹거리는 목소리, 선물, 응원의 메시지 등 각자의 고유한 진심을 담아 내게 마지막 인사를 나눠줬다.
시작할 때 축하 인사 보다, 끝날 때 내게 보내주는 인사가 훨씬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과 공유한 경험에서 연결되고 이어지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서로 주고받으며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조용히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마음을 나눈 동료와는 인사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다행히 내 마음속에 있던 분들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었다. 만약 안 그랬다면 나는 속상한 마음 쭉 안고 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란 사람은 그렇다. 중요한 순간에는 표현해 주고 챙겨주고 기억해 주는 것, 그것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게 바로 '관심'이란 것이니까. '나이 40 넘은 아줌마'는 하나의 사회적 통념으로 구분해 놓은 개념일 뿐이다. 10대나 40대나 변함없이 나는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사소한 것에도 서운하고 속상해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한 회사의 '대표'로서,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듬직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지닐 때도 있지만 그 안에 순수한 나란 사람은 그렇다.
암 0기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많은 분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어떤 친구는 힘들게 밥 하지 말고 시켜 먹으라며 '배달의 민족 10만 원권'을 보내기도 했다. 상품권, 기프티콘 등 톡으로 모든 게 가능한 시대라 선물도 충분히 받았다.
오늘 방사선 20회가 끝났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알겠지만,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몸이 정말 피곤하다. 근데 참 애매하게 피곤하다. 괜찮았다가 급 피로해졌다 패턴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는 피곤함이라 이게 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20회의 치료를 마쳤다.
시작 아닌 끝.
나는 또 축하를 받고 싶다. 치료 끝낸 축하.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 치료 끝냈으니 축하파티 하자고 얘기를 꺼냈지만 어쩌다 보니 그냥 지나갔다. 나도 일정이 있어서 축하파티할 시간의 여유는 없었다.
잠들기 전 밤이 되니, 여러 생각이 올라오다가 글을 쓸까 하다가 단어 몇 개만 적어놓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적었다.
시작이 아닌 '엔딩'을 축하받고 싶다.
세컨드 잡을 3년간 열정적으로 일하고 내려놓은 축하.
방사선 치료를 빠짐없이 받고 끝낸 축하.
그럼 누구한테 축하받을 건데?
내 마음 제일 잘 알아주는 게 바로 나인데. 내가 나를 축하해 주면 된다. 어떻게 축하하면 되는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이 삶이 끝날 때도 내가 나를 맘껏 축하할 수 있게 나답게 살기 제2막 아니, 제3막 시작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하며 내가 직접 선택하는 삶. 그리고 함께 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