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규 Dec 30. 2022

오늘을 충실히

“Carpe Diem!! Even if it kills me.” 이 영화를 본 건 작년 봄이다. 당시 나는 한해를 쏟아부었던 입시에 성공해 새 학교에 막 편입했을 무렵이었다. 앞길이 창창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코로나로 수업은 전부 비대면에 전공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덜컥 3학년이 되어 심화 과목을 들으려고 하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더 이상 공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거였다. 나는 그저 취업이 잘된다는 학과에 들어왔을 뿐이었고 그 잘된다는 취업도 찾아보니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목표가 없으니 공부는 더욱더 하기 싫어졌고, 그제야 인생을 너무 막연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끙끙 속앓이 하며 한참을 헤매다가 처음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았다.


 남들 다 하는 것들, 으레 정해져 있는 것들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세상은 튼튼했다. 전공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취업 생각도 안 했다. 대신에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연기를 배웠다. 또 블로그를 시작해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글을 썼다. 게시글이 점점 많아지니 비슷한 콘텐츠를 올리는 이웃이 늘었고, 그중 한 분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 그렇게 키팅이라는 영화 속 인물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키팅의 교육은 조금 남다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찾고 현재를 즐기며, 삶의 목적을 찾으라고 한다. 입시밖에 모르던 영화 속 학생들은 꼭 나의 모습 같았고, 그의 가르침은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키팅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찾아간다. 그렇게 모두 원하는 것을 찾았다면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게 영화다운 결말이겠지만 비극적 이게도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나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이 영화의 결말이 당연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학생들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문제아 취급했고, 키팅은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지 않고 달콤한 말만 속삭이는 악귀 취급했다.


 나도 안다. 당장 내일 죽는 것도 아니니까 현재를 즐기라는 말은 동시에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는 걸.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이상 우리는 현실과 이상을 잘 저울질하며 살아가야 하겠지.

 그런데 되짚어보면 나는 항상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스물한 살에 연극을 했을 때도 학점을 망쳐버렸고, 재작년에 편입했을 때도 좋아하던 친구를 떠나보냈으며, 지금도 하기 싫은 공부는 제쳐두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만 하고 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계속 투정만 부리는 어린애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난 학점을 망쳤어도 버젓하게 편입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렵게 이별했어도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순간순간 현재에 몰두했던 여러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하는 고민은 아무렇지 않았다.

 사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는 아직도 세상이 어렵고 뭐가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며 매일 돌아오는 오늘을 충실히 산다면, 그 오늘이 모여 또 미래의 어엿한 나를 만들지 않을까. 열심히 에세이를 쓰다 보니 오늘도 벌써 하루가 저물었다. 뭐, 원래 겨울은 해가 빨리 지는 법이니까, 오늘처럼 하루가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나면 자연스레 봄이 찾아올 거다. 분명!


+ 실은 고민을 하는 이 순간조차 봄일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역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