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도움의 수고로움

타인의 도움

by 조선아 SSunalife

나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내가 도리어 많이 배울 때가 많다. 그들의 열정과 도전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내가 젊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더 일찍 깨닫고 실천하는 지혜로운 젊은 이들을 보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나는 가급적 학생들을 고용하고 그 학생들이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나중에 그 경험들이 성장해 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함께 일한 학생들이나 내 수업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 추천서를 써주는 일이 바쁠 때는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남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작게나마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상투적으로 쓰기보다는 시간이 허용하는 한 가급적 지나간 기억을 많이 들춰내고 되도록 여러 기록들을 참조해서 그 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적절한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이 결과가 좋았다는 소식을 전하면 나 또한 내 일처럼 기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용기를 잃지 말고 더 큰 꿈을 가지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때도 있다. 좋은 결과를 전하는 소식에 대한 답신은 간단하게 한 두문장만 써서 보내면 되는데 그 반대의 경우는 문장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혹시나 나의 성의 없는 답변에 안 그래도 실망하고 있을 사람에게 혹 상처가 될까 봐서다.

오늘은 외출해서 돌아와 보니 우편함에 조금 큰 카드가 배달되어 있었다. 보낸 이를 보니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아닌 내 집주소로 보낸 것이 이상하고 11월에 크리스마스 카드 치고는 너무 이르고... 나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보았다. 카드 표지가 가을 단풍 그림과 함께 'Thank you very much'라는 문구가 있었다. 열어보니 작년에 다른 대학 박사과정 지원을 위해 추천서를 써주었던 그 학생에게서 온 카드였다. 작년에 코비드로 학교가 다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학교를 나가지 않으니 내가 연락처를 학교 대신 내 집주소를 주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학생은 지원했던 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추천서를 써주어서 감사했다고. 한국말을 못 하는 캐나다인이지만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문장까지 넣어서 추천서를 써준 나의 시간과 노력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메일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는데 손으로 쓴 카드를 받고 보니 코로나 시국에 이 카드를 전달하기까지 보내는 사람의 수고로움이 묻어났다. '고맙기는 하지만 애고 뭐 이렇게 까지... 합격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뭐라고 답신을 해야 하나...' 등등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이십 대 후반에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애 둘 딸린 아줌마가 급하게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마감일까지 얼마 남지 않아 한국에 계신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부탁하며 보챘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경황도 없고 솔직히 잘 몰라서 교수님들께 도움이 될 만한 자세한 자료를 보내지도 않고 그냥 이런 대학원 프로그램을 지망하고 날짜가 촉급하니 추천서를 언제 언제까지 써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내 무지함과 무례함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나에게 추천서를 부탁할 때 본인이 언제 내 수업을 들었고 그때 어떤 점수를 받았고 이런 과제물을 제출했고 그때 내 피드백이 어땠고 본인 입학 지원서 내용 등 비교적 상세한 자료를 보내주며 최대한 정확하고 좋은 추천서를 받도록 노력하는데 나는 그 당시 그러한 과정을 몰랐다. 학생이 나 하나인 것도 아닌데 그것도 한국말도 아닌 영어로 써야 하는 추천서를 내가 필요로 한 날짜까지 써서 우편으로 보내주시며 (그때는 이메일이 아닌 국제 우편으로 직접 보냈어야 했다) 내게 행운을 빌어주셨던 그때 그 교수님들의 지원과 도움이 없이는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캐나다라는 모든 것이 낯설고 분주한 하루하루 생활에 대학원 입학을 하게 돼서도 추천서를 써주신 교수님들께 마음을 다한 감사의 인사를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십 대와 삼십 대 때에는 내가 무엇을 이루면 그것이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때론 교만하고 자만했던 내 모습들이 생각난다. 사십 대를 지나니 내 노력이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가급적 모든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오십 대에 접어드니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좀 더 이른 나이에는 남을 위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고 나 자신을 위하는 일에 급급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각과 말로만 남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에도 남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이고 행동으로 반영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학생에게 답신을 하기 위해 이메일을 열었다. 문득 혹시 내 추천서가 그 당시 바빠서 대강 쓴 것은 아닌가... 내가 그 학생 지도교수도 아니었는데 뭘... 그런데 내가 그 학생을 위해 뭐라고 추천서를 썼지?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소식이 있기는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답신을 했다.


오늘도 난 생각한다. 감사하는 일에 게을리 말자. 남이 나에게 도움을 베풀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와 노고를 다 헤아리지 못 했다. 그러나 내가 남을 도와보니 내 도움이 크건 작건 간에 수고로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더 겸손하고, 타인의 도움에 더 감사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더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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