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우연과 필연은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역사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에 의해서 설명되고 이야기되어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루키푸스 (Leucippus)는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원자론의 창시자이고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는 그 원자론을 발전시키고 완성시켰다. 루키푸스는 아무것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은 이성과 필연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다"라고 했으며 그는 그 기저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1965년에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프랑스 생화학자 쟈크 모노 (Jacques Monod)는 1970년 그의 책 ‘우연과 필연' (Chance and Necessity)라는 책에서 life emerged by “pure chance” 인간은 우주에서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했다. 쟈크 모노의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란, 생명은 30-40억 년 전쯤 화학 원소와 생명을 발생시킨 유기물의 혼합 용액의 융합에 의한 결과라고 본다. 첫 번째 아미노산이 형성되면 생명체가 점점 더 복잡한 개체와 유기체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데모크리토스와는 달리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쟈크 모노는 진화는 우연히 생겨나고 우연이 점진적으로 쌓여서 결국 필연이 된다고 보았다.
2013년 개봉된 영화 ‘변호인’에서 ‘불온서적'으로 등장했던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릿 카 (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정의하고 필연은 우연을 통해 관철된다라고 했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합리적 인과관계로 보고 우연적 사건의 연속으로 보는 우연 사관을 배척했다.
체코슬로바키아 태생 소설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는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을 통해 삶에 있어서 우연과 필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토마스 (Tomas)는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된 테레자 (Tereza)를 만나기까지 6번의 우연이 있었다. 토마스는 테레자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필연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갈수록 그는 그 필연성에 회의를 느끼고 우리의 삶은 필연이라기보다는 숱한 우연의 연속이라고 여기게 된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인간은 매번 우연 앞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과정들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우연과 필연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도 한다. 우리의 삶이 처음부터 정해진 대로 반드시 원인이 설명되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요소들만 있다면 우리가 뜻밖의 일들로 슬퍼하거나 행복할 일도 없을 것이다. 우연이 반복되어 필연이 되는지 처음부터 필연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삶 속에서 뜻밖의 우연을 발견하는 일들은 그리 어렵지 않다.
태평양 건너 중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BC주 (Province of British Columbia) 그것도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코퀴틀람 (Coquitlam)이라는 도시 내에서 이미 장을 보고 나간 내가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어서 다시 들른 한인 마트에서 삼사십 년 전 중고등학교 동창을 태평양 건너서 그 시간 그곳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필연이라고 해야 할까? 그 뒤로 특별한 관계가 유지되지 못했으니 우연이었나? 우연한 만남이 우연으로 끝난 것인가?
집 가는 방향이 같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 남편이 되고...
대학 다닐 때 영어 프리토킹 (Free talking) 토론하는 곳에서 처음 만난 아저씨가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함께 걷던 것이 시작이 되어 그 남자가 오늘날 남편이 되어있는 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만나 결혼까지 하라는 필연이었나? 아니면 우연인 만남을 서로가 노력하여 필연으로 만들었나?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가며 산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그때 왜 하필 거기에!’ 하며 후회하고 때론 ‘내 능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운이 없었지!’라고 위로하기도 하며 또는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지네!’라며 우연에서 필연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기도 한다.
우연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는 Accident, Chance, Coincidence 같은 단어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시렌더피티 (Serendipity)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우연하게 얻어진 기쁨이나 행운이라는 긍정적 뜻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험에서 실패를 했는데 본래의 의도와 달리 그 실패가 도리어 인류에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준 경우도 이 단어를 쓰기에 적절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포스트잇은 3M에서 만든 접착식 메모지다. 3M 연구원인 스펜서 실버 (Spencer Silver) 박사가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려다가 실수로 접착력이 강하지 않고 끈적이지 않는 접착제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5년 후 3M 다른 동료의 손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포스트잇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우연히 누굴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그 만남이 인생에 커다란 변곡점이 되어 본인이 성장해가는데 도움이 된다거나 짧은 우연한 만남이 평생 함께할 동반자로 이어지는 사랑이야기에도 시렌더피티는 등장한다.
2001년에 나온 영화 시렌더피티 ‘Serendipity’는 우연히 만난 두 남녀 주인공들 조나단 (Jonathan)과 세라 (Sara)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뉴욕에서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다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이름도 모른 채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헤어질 때가 되어 조나단은 혹시 모르니 세라에게 전화번호를 줄 수 있냐고 묻자 세라는 “만나야 할 운명이면 만나게 된다 (Well, if we are meant to meet again, we will meet again)”라는 말을 한다. 운명을 시험해 보자며 세라는 5달러짜리 지폐에 조나단의 연락처를 적어 달라고 하고 그 돈으로 사탕을 사 먹어 버린다. 세라는 자신이 읽고 있던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 (Love in the Time of Cholera)’ 첫 페이지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고 다음날 헌 책방에 가서 그 책을 팔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의 손에 돌아오면 운명을 믿고 연락하기로 한다. 7년이 지난 후 조나단과 사라는 각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조나단은 결혼 전날 약혼자에게서 세라가 연락처를 적어둔 그 책을 선물로 받게 된다. 세라는 친구와 뒤바뀐 지갑에서 조나단의 지폐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재미나게 얘기를 나누던 그 아이스링크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세라가 가지고 있던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소설은 우리에게 익숙한 ‘백 년 동안의 고독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이라는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을 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의 운명적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첫 작품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 남주인공 플로렌티노 아리사 (Florentino Ariza)가 여주인공 페르미나 다사 (Fermina Daza)의 집안의 반대로 그녀와 결별했으나 그녀를 반세기,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리다 70이 넘은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장대한 사랑 이야기이다.
살다 보면 필연이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날 때도 있고 반대로 필연인 줄 알았는데 우연으로 끝나는 일도 있다. 우리는 날마다 우연한 기쁨이나 행운을 쫒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우연이 필연이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