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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Aug 31. 2022

우리 집

고양이와의 대화, 오래된 집, 보호, 영역 


일요일 오후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캣타워 제일 높은 곳에서 널브러져 쉬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 집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사는 캐나다 밴쿠버에도 휴일이면 가끔 몇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집집마다 방문한다. 그리고 교회 홍보를 하는 전단지를 놓고 가거나 책자를 전달하려고 벨을 여러 번 누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또는 드물지만 인터넷이나 가스 회사에서 상품을 홍보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누구인지 살피기 시작했다. 흰머리가 뒤섞여있는 백인 남자가 우리 집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 사람은 교회 전단지를 전달하거나 회사 상품을 파는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자세히 보니 걸을 때 다리를 약간 뒤뚱거렸다. 키는 우리 아빠보다도 작은데 배는 아빠보다 조금 더 나온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지 검은색 슬리퍼를 직직 끌고 왔다. 인상착의로는 적어도 70세는 족히 넘어 보였다. 현관문 앞으로 다가온 이 남자는 '딩동~' 하고 벨을 눌렀다. 


나는 캣타워에서 후다닥 내려왔다. 엄마도 위층에서 내려왔다. 아빠는 엄마에게 누구인지 먼저 확인하고 문을 열라고 일렀다. 엄마는 밖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 외시경을 보고 '누구지?'라고 갸우뚱했다. 벨이 한 번 더 울렸다. 엄마는 "누구세요 (Who is it)?" 하며 문을 열었다. 


엄마와 그 아저씨와의 대화를 들어보니 우리 집을 팔면 어떠냐 등등 그런 얘기였다. 그 아저씨가 집을 짓는 사업을 하는데 우리 집이 뭣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팔 마음이 있으면 여기로 연락해라 하고 연락처를 남기고 떠났다. 사실 우리 집 파는 얘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 집 주변의 많은 주택들이 아파트나 타운하우스로 변해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리 집도 팔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무 멋지거나 크지 않은 우리 집이 내게는 딱 좋다. 작고 낡았지만 나는 이 집에서 지난 15년이나 지내왔다. 이 집에서는 운동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밥은 일층에서 먹지만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집안은 언제나 많은 물건들이 나뒹굴고 정돈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내 체취가 묻은 정든 것들이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물건들 냄새를 맡고 모든 것이 안전한지 확인한다. 아빠 몰래 내가 이것저것 긁어놓은 것들도 많다. 아빠에게는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솔직히 우리 엄마는 만사 오케이다. 침대를 긁건, 이불을 긁건, 소파를 긁건. 내가 어쩌다 긁는 장면을 목격하면 엄마는 나를 안아서 코를 비비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엄마의 벌은 엄마 코와 내 코를 몇 번이고 비벼야 하는 코로 하는 키스다! 정돈되지 않은 넓은 앞뜰과 뒤뜰도 날마다 산책하며 구석구석 확인해야 할 것들도 참 많다. 우리 집 안과 밖 그 어디에도 내 체취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정든 집을 팔라고 들쑤시러 온 그 아저씨가 참 밉상이라고 생각했다.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 두어 개를 할퀴어주지 못한 게 자못 후회가 된다. 

나는 엄마가 그 아저씨에게 연락을 해서 우리 집을 팔게 될까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오후 내내 좀 우울했다. 엄마에게 엄마 생각은 어떤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데 내 어휘력이 딸려서 엄마와 의논을 깊게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날이 어두워졌다. 엄마는 심드렁해져 있는 나에게 말을 시켰다. 나는 누워있는 엄마 옆으로 가서 내가 좀 맘이 그렇다고 "먀용" 알렸다. 엄마는 내 코에 엄마 코를 비비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내 배도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 손으로 엄마의 따뜻한 체온이 전달되었다. 엄마 손이 닿으면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엄마는 나와 눈을 맞추면 눈을 깜박깜박해준다. 그러면 나는 평온해진다. 나도 엄마에게 깜박깜박 눈으로 답한다. 나는 이렇게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콜튼, 이 집은 콜튼 집이야. 알았지? 엄마는 콜튼이 있는 한 이 집 안 팔아. 그러니까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오... 


남자인 나는 영역에 집착이 크다. 나는 새로운 것보다 내게 익숙한 것들이 좋다. 누가 나더러 뭐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 집 그리고 엄마 아빠를 보호할 의무감을 갖는다. 옆집 냥이들이 우리 집에 실례를 하지 못하도록, 검은 새들이 와서 우리 마당 잔디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쥐들이 굴뚝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내가 규칙적으로 순찰을 돌아야 한다. 내 깨알 자랑 같지만 우리 집은 내가 없으면 폭망 할 것이다. 나 때문에 우리 집이 그나마 이렇게 안전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은 자유라고 할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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