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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10. 2023

그새 나는 너에게 깊은 정이 들었다.  

반려묘, 고양이, 집사, 정이 들다, 러브 스토리

비록 짧았지만 강렬했던 내 러브스토리를 말하려고 한다.


2022년 10월 5일 한국에 살고 있는 이모가 울 엄마랑 같이 가는 유럽 여행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이모는 나만 보면 '어머머 무서워' 하면서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나를 보면 '어머 저 눈 좀 봐, 무서워' 하면서 내가 무섭다고 난리였다. 내 신비한 눈빛과 나이를 까맣게 잊은 내 섹시한 몸매에 감탄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나를 보고 무섭다고 난리를 피우니 참 어이가 없었다. 보아하니 인생도 살만큼 살아온 분이 어린아이처럼 내가 무섭다고 도망을 다니니 이 내숭쟁이를 어찌 대해야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에 우리 엄마는 "언니, 콜튼이 얼마나 젠틀하고 스마트한데... 콜튼 앞에서는 모든 걱정을 내려놔!"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 이모는 당췌 대책이 없었다. 내가 조금 가까이 가기라도 하면 "엄마야! 너 저리 가!" 하면서 화들짝 돌아섰다. 내가 웬만해서는 먼저 대시를 하는 법이 없는데 우리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기에 내 자존심 다 버리고 좀 친근하게 대해주려고 하는 건데 이모는 내가 조금만 가까이 가도 소리를 꽥 질렀다. 우리 엄마는 이모에게 "콜튼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으나 이모는 "으구 콜튼 얘기 좀 그만해! 아예 소설을 써라!"라고 엄마에게 쏘아 붙었다. 그리고는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를 걱정하며 내가 털이 많이 빠진다며 나를 원망이라도 하듯 바라봤다.


'우리 엄마와 생김새는 비슷한데 성격은 완죤 딴판이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도 신경 꺼야지...'


그렇게 조금 긴장된 하루가 지나갔다. 두 번째 날부터는 나도 다시는 이모 곁으로 가까지 가지 않으려고 맘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나들고 휴식을 취하는 그 방에서 이모가 머물게 되었다. 이 방은 내가 수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방문을 늘 열어두는데 이 이모는 내가 드나드는 것이 무섭다며 방문을 닫았다.


'객이 주인을 쫒는 것을 이걸 두고 하는 말이군! 도대체 이 이모의 정체는 뭐야!'


이 이모가 어서 빨리 우리 집을 떠났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둘째 날도 밤늦게까지 이러쿵저러쿵 수군덕거리고 낄낄대고 많은 시간을 둘이 붙어 다녔다. 이 아줌마 둘은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고 사연이 많은지 도착해서부터 끝도 없는 수다 삼매경이더라. 이 두 사람은 속닥속닥 들릴락 말랑하게 끊임없이 남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모는 갑자기 소리 높여 웃다가 또 갑자기 훌쩍대기도 했다. 도대체 나로선 그 상황들이 뭔지 모르겠더라. '혹시나 이 이모 조울증 환자 아닌가? 큰일 났다. 우리 엄마까지 영향을 받게 될까 봐서...' 우리 엄마도 이모를 따라 웃다가 울다가 그렇게 두 여인네들은 이틀째 밤도 송두리째 태울 기세였다.  


세 번째 날 엄마와 이모는 유럽여행을 떠나기도 되어있었다. 이 주간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안타깝지만 골치 아픈 이 이모가 생각보다 빨리 우리 집을 떠난다니 나로선 천만다행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짐을 싼다고 또 쑥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짐을 제대로 싸는지 확인도 할 겸 문을 빼꼼히 열어보았다. 이모는 여전히 "콜튼 저리 가!"라고 반응했다. 엄마는 "언니, 콜튼이 우리 짐 싸는 거 안전하게 하는지 확인하러 왔으니 냅둬"라고 했다.


짐을 다 싼 이 두 자매는 동시에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여전히 끝도 없는 얘기들을 해나갔다. 이 두 사람 수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가끔 우리 집 아빠, 누나, 형 얘기들이 양념으로 들어가고 많은 부분은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두 사람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로 다리를 꼬았다가 무슨 얘기를 할 때는 갑자기 윗 몸을 세워 앉았다가 이내 다시 벌러덩 드러눕기도 했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이제 그만하고 자라고 말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침대 위로 살포시 올라갔다. 이모의 호들갑이 싫어서 엄마 쪽에 조용히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모가 훌쩍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수다쟁이 아줌마 조금 있으면 또 웃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이 들고 사태가 좀 심각해졌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모는 울었다. 그리고 나는 뚝뚝 떨어진 이모의 굵은 눈물을 봤다. 나한테 나가라고 소리 지르던 그 골치 아픈 이모의 눈이 슬프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순간 내 심장이 슬픔으로 얼어버렸다.


엄마는 일어나서 티슈통을 이모에게 건넸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울고 있는 이모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강심장 우리 엄마는 평소 좀처럼 우는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여자가 우는 모습에 익숙하지 않다. 어떻게 이모에게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 영 당황스럽고 어색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앞발로 이모의 발가락을 살짝 건드렸다. 이모가 또 소리를 지를까 봐서 조심조심 또 조심해서 이모의 발가락을 두세 번 건드렸다. 그리고 '이모. 울지 마!'라고 말했다. 순간 이모가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내 귀를 의심할 말을 했다. "알았어. 콜튼 이모 울지 않을게!"라고. 나는 두 발을 얌전하게 모으고 이모를 쳐다봤다. 슬픈 이모의 두 눈을 보니 나도 눈물이 와락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는 이모에게 누구든 언젠가는 다 떠나는 것이니 남아있는 자들은 떠난 자의 몫까지 챙겨서 행복하게 사는 게 도리라고 했다. 아마도 이모와 엄마가 몇 달 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이모부 얘기를 하셨던 모양이다.


나와 이모와의 러브스토리는 그날밤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슬픈 이모의 큰 두 눈과 그녀의 눈에서 떨어진 굵은 눈물이 내 작은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엄마가 잠을 자러 엄마 아빠방으로 돌아간 뒤 그날 밤 나는 내 잠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이모를 지키기로 했다. 이모가 나를 아직 무서워할 수 있으니 내가 이모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신 이모 방문 앞에서 밤새 이모를 지켜 주기로 했다. 육십이 넘은 이모는 한밤중에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 나는 이모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나도 따라갔다. 이모가 안전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면 다시 이모 방 앞에서 밤새도록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침에 밝은 이모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그날 그 깊은 밤을 이모 방 문 앞에서 보냈다.


아침에 방문을 열자마자 나를 발견한 이모는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이전처럼 소리를 지르기는 것이 아니라 "굿모닝 콜튼.  잤어!"라고 내게 친절한 인사를 건넸다. 내가 밤새   앞에서 자기를 지키고 있었던 것을 이모도 아는 눈치였다. 그러나 깍쟁이 이모는 입으로는 나를 반겼으나  머리  번을 제대로 쓰다듬어 주지 않았다. 손을 들었다가는 이내 다시 내렸다. 아직도 나를 무서워하는  같았다.


그날 아침 이모는 엄마를 보자마자 내 얘기를 시작했다.  


"콜튼이 정말 신기하다. 밤새 나를 보호해 주었어. 화장실도 따라오고..."


우리 엄마는 이모가 나를 칭찬하자 아주 신이 났다.


"내가 몇 번을 말해. 콜튼은 고양이가 아니라고. 콜튼은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라고. 콜튼은 모든 걸 다 안다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이모는 "그러게! 진짜 네 말이 맞는 거 같어!"


두 자매는 그날 아침 그렇듯 나를 극찬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이모와 막 밀당이 시작되었는데 2주 동안의 기다림은 길고도 길었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이번에는 엄마보다도 이모가 더 기다려졌다. 혹시라도 이모가 밴쿠버에 들르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이변 없이 이모는 밴쿠버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와 나를 다시 만난 이모는 완전  사람이었다. 이모와 엄마의 대화의 절반이상은  얘기를 하고 있는 듯싶었다. 이모는 보고 싶었다면서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방문도 열어두고 내가 이모방에 들어가도 "콜튼 왔어?"라고 물어봐주고. 아침저녁으로  앞마당 산책도 함께 따라오고. 이모는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고양이를 만져본다며 본인 스스로도 놀랍다고  번이들먹였다. 나는 이모가 다시는 울지 않도록 든든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이모의   눈이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가득했으면 좋겠고 이모가 오래오래 우리 집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이모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짧았지만 깊게 마음을 주고받았던 이모와의 이별은 참 슬펐다. 엄마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목소리도 많이 닮은 이모는 정이 많았다. 눈만 뜨면 "콜튼" 내 이름을 부르고 입이 마르도록 엄마에게 내 칭찬을 해댔다.


이모는 공항으로 출발  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머리를 쓰담하던 이모의 손길이 뜨거웠다. 그리고 이내 이모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났다. 나도 목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꾸욱 참았다. 그녀를 태운 아빠차가  앞을  떠나갈 때까지 나는 창밖을 보지 않기로 했다.


이모가 떠난 그 방은 왠지 휑하고 허전했다. 나는 그 방 창가에서 이모의 눈빛을 떠올리며 온종일 잠만 잤다.


이번에는 이모와의 작별이 다소 길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우리 엄마가 멀리 않은 시간 내에 나와 이모가 또 만날 수 있도록 오작교를 놓아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이모를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이모가 늘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이모를 향한 내 러브스토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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