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했어! 진짜 똑같다!
오랜만에 여고시절(어색한 단어)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내내 한말이, 언젠가 어른들이 자주 하던 그 말이다. 그런 말들은 어른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 친구들을 만난 저녁시간 동안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다.
만나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이 충만해지고 미소가 지어지는 기분.
이런 기분이 드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참 잘 살았구나 싶다.
그다지 많거나 넓은 인간관계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들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단순히 오래 본 친구들이라서 그런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나는 대학입학 전까지 지방 소도시에 살았었다.
작은 도시라서 갈 수 있는 중학교도 겨우 두 곳이었고, 인문계 고등학교는 두 곳뿐이었다.
서로 전혀 몰랐다가 고등학교에서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도 같이 나온 사이!
우리는 2년간 같은 반이었지만 그렇다고 매일 같이 다녔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내내 야간강제자율학습을 했으니 작은 교실에서 하루 종일 붙어있기는 했지만 매일같이 대화를 했다거나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지 않았다.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다른 친구들과 더 친했는데, 고3이 되고 그것도 수능이 가까워질 무렵에 어떤 계기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 계기로 원래 친했던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이 친구들과 친해졌다.
기억이 나는 건 아주 작은 사건들. 수능직전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 몰래 학교 옥상으로 가서 담요를 뒤덮고 추위에 떨며 본 별똥별쇼. 그 이후에 그보다 멋진 쇼는 본기억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수능을 무사히 치른 후에 같이 분식집을 신나게 들락거리던 시간들 정도인가.
서로가 다른 대학이지만 어찌 되었든 모두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고, 어쩌다가 몇 년에 한 번씩 연락이 닿았다. 결혼 같은 사건이 있기도 했고, 그냥 이직하기 전 생각이 났을 때도 있었다. 항상 연락이 닿은 직후에는 만났고, 만나서는 가족얘기에 고민얘기까지 너무나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다. 비슷한 고민을 했고, 어려운 일은 같이 걱정해 주었고, 좋은 일은 같이 기뻐해 주었던 친구들. 그래서 이 친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도 며칠 만에 본 사이처럼 편했고,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만나고 나서야 진가가 나오는 관계.
만났을 때 대화가 막히지 않고 흐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주거나 받지 않고, 서로에게 자격지심을 가지지도 않는다. 어투를 신경 쓰지 않지만 기본적인 매너에 가벼운 건 가볍게, 조심스러운 주제는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친구들. 무엇보다 헤어질 때 다음을 기약하지도 않지만 그다음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계. 만나고 나서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은 관계.
아마도 이건 우리가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함부로 친구의 삶을 평가하지도 않고, 서로의 의견과 삶을 존중했다. 서로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서로가 만든 경계를 넘나들거나 넘나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 마음이 같이 있는 시간 동안 서로를 편하게 하고, 대화를 이어가게 하고 또 즐겁게 만드는 게 아닐까.
우리는 계속 나이가 들어갈 거고, 앞으로 주름도 더 생길 거고, 지금처럼 대화의 주제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서로의 고민과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진심을 다하는 이 마음.
고민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는데, 아직까지는 성공한 삶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