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재무회계팀에서 있었던 일
스타트업에 와서 처음 만든 영어 닉네임이 라일라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영어닉네임을 쓰는 문화가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래했다는데, 닉네임을 부르면서 수평적인 소통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통해 효율적인 협업을 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구글이 알려주었다 :)
처음에는 어색했던 내 이름도 금방 적응이 되었고 다른 분들의 닉네임을 부르는 일은 한글이름이면 들으면 바로 적을 수 있을 텐데,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나는 들어도 적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만 빼면 다 괜찮았다. 이 단점은 슬랙에서 담당자를 찾기 위해 유사한 이름 사이에서 혼돈을 주지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면 이런 단점은 없다.
사실 대기업에서는 내 이름이 불리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불리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은 나름 긍정의 신호였다. 이름은 좋은 일 혹은 나쁜 일로 많이 불린다. 중간은 없었다. 그리고 재무회계 업무에서, 좋은 일은 생각보다 많이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름이 잘 불리지 않는 것에 안도했고, 익숙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아니다. 내 이름은 그냥 시시때때로 불리는 이름이 되었다.
무엇인가 회사의 "숫자"가 들어가는 혹은 관련된 모든 일을 물어보기 위해서 불려지는 이름.
나는 정리정돈을 그래도 꽤 잘하는 편이다.
정리를 해 놓으면 못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대체적으로 결혼 전 유지했던 나만의 공간은 "깔끔하다", "따뜻하다", "향기롭다" 같은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으니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어설픈 구석이 많이 있다.
옷장은 최대한 모든 못이 보이게 다 꺼내둔 옷으로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던가,
가지런히 모든 가방을 정리해 두고, 정리가 귀찮다는 이유로 매일 한 가방만 드는 데다가 그 가방은 현관 앞에 던져둔다던가,
주방을 깨끗하게 싹 정리하려고 실컷 바닥, 싱크대와 냉장고까지 다 청소하고 정리해 놓고선 마지막에 귀찮아서 식탁은 어지른 그대로 둔다던가 하는 일들.
그리고 나는 참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다.
정리 정돈하는 내 모습과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이 다르지 않기에.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입사하여 내부기장 전환, ERP 도입, 결산 프로세스 세팅과 운영 등 재무/회계 프로세스를 엄청나게 정리하고, 스스로 제법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어지른 식탁을 안치운 주방처럼.
스타트업에서 라일라로 일하면서 했던 일들, 그리고 있었던 일을 적어두려 한다.
대기업처럼 촘촘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처럼 완벽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최선이라고 만든 팀과 프로세스들.
우당탕탕 스타트업 재무회계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