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회계팀을 만들었다.

입사하자마자

by Layla

스타트업에 온 걸 실감했다.

자발적 야근을 하고 있다니.

이거 맞는 건가?


내가 처음 중소기업을 다녔을 때, 3년 경력이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경력.


선입견이 없다는 장점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가진 경력. 대기업에서야 경험이 적어서 처음 하는 일도 물어볼 대상이 얼마든지 있었고, 만약 해본 사람이 없으면 무조건 외주로 시작했다. 근데 중소기업은 얘기가 많이 다르다. 없다, 해본 사람도, 일을 맡길 사람도 심지어 풍요롭지도 않은 자본에 외주는 어림도 없지.


인사담당자와 나 오직 두 명.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채로 회계 원장 들여다봤었다. 계정별로 원장을 이리저리 보다가 재고자산을 파보는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듯 업무를 시작했다. 진짜 거짓말 조금 보태면, 매일 야근에 주말출근도 자발적으로 했다. 어렸고 젊으니까 걱정하지 않았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몇 달을 일했을까.

둘이서 매일같이 야근하면서 쳐내던 업무가 어느새 네 명 다섯 명으로 늘어난 팀원이 야근이 조금씩 줄었다. CFO도 오고, 야근도 많이 줄었는데, 나는 오히려 현타가 왔었다.


열심히 야근해서 쳐내고, 내 나름대로 업무나 히스토리를 정리하고 프로세스도 세팅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들.

자꾸만 업무는 늘어나고, 열심히 해도 못 채워진 부분만 발견되니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일만 하며 살지 라는 생각. 아마도 번아웃이 왔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결국 해결하지 못해 퇴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스타트업이라니.

시리즈 B투자를 받았다는데, IPO를 준비한다는데 팀원이 없단다.

아니다 정확히는 팀원이 있었다. 내가 입사하자마자 쿨하게 인수인계도 없이 나갔을 뿐.

그래도 인사담당자는 있어서 다행인 건가.


인생 참 아이러니다.

내 발로 내가 걷어찼던 그 중소기업의 환경 그대로 다시 걸어 들어왔다.

이러자고 대기업을 그만둔 건 아니었지만,

어쩌지 못할 환경은 그냥 적응하는 게 답이라는 생각으로 아직도 적응 중이다.


그래도 이전 중소기업에서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으로 이번에는 다르게 시작했다.

당장의 업무도 중요하지만, 혼자가 아닌 팀을 만드는 게 우선이겠다 싶었다.

야근을 할 수 있지만, 계속된 야근은 나를 지치게 만드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팀을 어떻게 운영할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뽑을지를 구상하는데 며칠.

그리고 팀원을 뽑는데 3개월이 걸렸다. 면접을 30명 이상 본 거 같다.

그렇게 신중하게 뽑았고,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업무를 하며 매일같이 했던 야근 해도 진전되지 않던 일들이, 팀원이 생기고 조금씩 진전이 되었다. 특히 같이 6개월 정도 일을 했을까? 그 이후부터는 업무 진행속도나 의사결정 속도가 현저히 빨라졌다.

관리할 자회사가 여러 개로 늘어나거나, 상장을 준비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굳이 팀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


외부투자를 받거나 외부감사대상이 될 정도의 스타트업이라면, 추천합니다.

팀을 만드세요.

만약 재무회계 담당자를 처음 뽑는 곳이라면, 가급적 리더부터 뽑으시기를.



작가의 이전글적당히 정리된, 적당히 깔끔한 라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