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도 걷기
요 며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여기가 어항 속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마라고 이렇게 늘 우중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유독 습하고, 유독 흐리고, 유독 비가 자주 내리는 것 같은 기분.
사실 생각해 보면 올해만 ‘유독’ 그러는 건 아니다.
계절마다 반복되는 느낌. 올해 유난히 습하다. 유난히 춥다. 유난히 뜨겁다. 등 계절이 지나간 뒤 내 총평은 늘 한결같다.
집도 집 밖도, 제주 전체에 습한 기운이 가득해도 요즘의 나는 걷기를 멈출 수 없다.
같이 걷기도 하고, 때론 혼자 걷기도 한다.
산책의 기쁨을 알게 된 뒤부터 매일 걷고 있다. 매일 걷다보니 산책의 기쁨을 알게 된 걸 수도 있겠다. 순서가 어떻게 됐든, 매일 걷는 지금이 정말 좋다.
동네 어멍들의 ‘커피 마실래?‘에도 설레지만 ’ 걸을래?‘가 23배쯤 솔깃하다.
함께, 커피집까지 걸어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걸어오면 그게 찐행복코스다.
같은 길을 걸어도 날씨가 다르고 바람과 향기가 다르고, 잎의 색과 꽃의 크기가 달라지며 매일 변하는 그 길이 같은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사는 동네는 개발된 지구이면서 마땅히 걸을 공원하나 없다며 투덜거렸었는데, 그때의 나는 산책의 기쁨은 모르고, 걷기를 운동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같은 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오히려 동네에 공원이 없어 매일 다른 길을 찾아 걷는 일이 행복하다.
낯선 길을 갈 때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고, 익숙한 길을 갈 때는 편안한 발걸음에 어제와 다른 자연들이 눈에 띈다.
길가 새로 생긴 건물 담에 능소화 묘목이 심겼는데, 어젠 한 송이였던 능소화가 오늘은 두 송이가 되었다든지, 꽃이 진 동백나무엔 관심이 없었는데, 자두처럼 새빨간 열매가 반짝이는 변화를 눈이 먼저 눈치를 채는 식이다. 어쩌다 동백열매가 달린 동백나무를 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며 매일 다른 동백나무 열매를 관찰하는 건 생소하면서도 꽤 재미있다. 한두 개는 갈색으로 변하면서 속이 벌어지며 터진다. 내가 보던 건 꽃 핀 동백나무와 나무조각 처럼 떨어진 동백씨주머니(?)여서 중간 과정을 알 수가 없었는데, 작년부터 이어진 산책 덕분에 동백나무의 놀라운 움직임을 매일 볼 수 있다.
7월 초인 지금, 산책길은 능소화가 진다. 주황색 꽃을 아래로 떨어뜨리면 담 아래 골목길이 온통 주황색이 된다. 검정 돌담길에 주황색 조합은 정말 예쁘다. 치자꽃들은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지고 있다. 길가 나무에 하얀 휴지를 뭉쳐 던져둔 것 같던 치자꽃이 누렇게 변하면서 지고 있다. 꽃이 지는 중에도 향기는 매혹적이다. 한창이던 접시꽃들도 저물고 있다. 이 와중에 무궁화는 피고 있다. 무궁화가 7월의 꽃이라는 걸 요즘에야 알았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꽃을 보여주는 시간은 1주에서 2주 정도 되는 것 같다. 내 핸드폰 사진첩에 올해 첫 수국 사진을 5월 31일에 찍었는데, 7월 7일인 오늘도 길 곳곳에 수국이 피어있다. 아직도 수국을 볼 수 있어 좋다. 제주에 와서 제일 좋아하게 된 꽃 중 하나다. 흔하게 볼 수 있으면 더 안 예쁘게 느껴질 것 같지만, 자주 봐도 신기하고 볼 때마다 예쁘고 신비롭다. 수국 마도 꽃잎의 모양이나 겹침. 색깔. 종류가 엄청 많아서 더 신기하다. 6월은 수국을 보며 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7월엔 어떤 변화를 관찰하며 걷게 될지 궁금하다.
덥고 뜨겁거나 비가 온다는 핑계로 7,8월에는 걸어 본 적이 별로 없으니 어쩌면 걸으면서 보낼 첫 7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