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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썽 Jul 31. 2023

7월의 산책길

열매가 가득한 길


7월에도 걷기를 멈추지 않기를 나에게 소망했다.


내 게으름이 나를 잠식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매일 걸으려고 했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걷기’를 6월 한 달 해내고 나니, 7월 매일 걷기는 6월보단 가뿐하게 해 낼 수 있었다.

아이폰의 피트니스 기능이 도움이 많이 됐다. 최소한의 목표를 설정하고(150kcal) 목표에 달성하면 빨간 동그라미를 준다.

빨간 동그라미를 받기 위해 걷는 건 아니지만, 동그라미를 받을 때까지는 걷는다. 음... 그럼 빨간 동그라미를 받으려고 걷는 거 아닌가.

여하튼, 시간으로는 한 시간, 걸음수로는 6,000보가 최소 목표다. 만보 걷기 단어가 너무 익숙해서 인지, 만보는 걸어야 좀 뿌듯한 감이 있다.


운동을 겸한 산책을 하며 자연을 관찰한다.

귤밭 입구, 7월에는 못 볼 줄 알았던 능소화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시들어 간다. 능소화 안녕. 내년에 보자꾸나.

콩알만 하던 귤은 이제 탱자보다 크다. 더위를 먹고 쑥쑥 자라는 귤이 신기하다.

귤밭에도 동백나무, 가정집도 동백나무, 그냥 길가에도 동백나무. 빨갛게 익어가던 동백열매가 나무색으로 변하거나 일부는 터지고 있다.

매일 보는 동백나무 관찰이 꽤 재미있다.

소담한 동네. 집집마다 무심히 피어있는 것 같아도 주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 골목을 걷는 기분이 좋다.

검은 돌담과 세월이 느껴지는 대문. 검은 돌담과 잘 어울려서 그런지, 능소화 울타리와 잘 어울려서 그런지 낡았네 하고 보면서도 예쁘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집을 내가 갖게 되면 이 대문을 바꿀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가 노래 가사처럼 울밑에 선 봉선화도 만났다.

울밑에 선 봉선화

소리 없이 재생되는 멜로디와 가사.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딱 저 대목만 기억하고 있으니, 왜 처량한지 알 수 없다. 모르고 싶다.

2023년 7월에 그 꽃을 보는 나는 그저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다음 달에는 터질 것 같은 씨주머니를 보면서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를 소리없이 재생하고 있겠지.


어린이 집 두 개를 지나면 무궁화 꽃이 피어있다. 무궁화는 피기 시작한 주에만 확 피더니, 보기 싫게 피다 지다를 반복하는데, 꽃이 지는 모습이 꼭 반만 피우다 던져놓은

보라색 담배꽁초 같다.  ’ 무궁화 삼천리‘ 애국가 탓인지, 담배꽁초처럼 말린 꽃 때문인지, 그냥 무궁화가 사람이라면 아저씨 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석류가 영롱하게 달려있고, 이름 모르는 어떤 나무는 머릿속 가마처럼 나뭇잎이 돋는 한가운데 열매가 맺히고 있다. 무화과는 나뭇잎과 열매가 한쌍인가 보다.


제각각 꽃의 모양과 빛깔이 다르듯, 열매도 다 다른 모습이 신기하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이런 걸 이제야 아는 것도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배롱나무 와 숙근버베나

자귀나무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배롱나무에도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백일 동안 피고 지는 배롱나무 꽃을 보다 보면 이 뜨거운 여름도 지나겠구나.


생각 없이 걷던 길들에도 낯설고 예쁜 꽃들이 있다. 찾아봤다. (꽃 찾기 기능 이거 너무 좋다) 버들마편초(숙근 버베나)라고 한다. 미니어처 수국 같은 꽃들이 조롱조롱 모여있는데 정말 작고 귀엽다. 이렇게 한 송이씩 말고 넓은 들에 한꺼번에 펴있으면 환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시들 때는 진보라가 연보라로 확 빠지면서 시드는 것 같다. 아직 완벽하게 시들지는 않아서 8월의 관찰 포인트로 남겨뒀다. 8월.... 아 8월... 정말 더운데, 이제 7월만 갔구나. 아직 한여름이 아니었구나.


한여름인 8월에도 매일 걷기를 나에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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