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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May 27. 2024

살려야 한다

레몬 마들렌의 상콤 발랄한 냄새가 향긋했다. 와! 이건 빵 향수로 만들어야 해! 집안에 온통 버터와 레몬 내음으로 가득 찼다. 냄새는 이미 합격이다. 보통 제빵의 성공 여부는 주걱질에서 알 수 있다. 너무 묽지도 뻑뻑하지도 않은 딱 좋은 이 느낌적인 느낌! 이제 계량 따윈 하지 않는다.


반죽을 많이 올려서 배꼽이 이쁘장한 마들렌이 아니라 뱃살이 후덕하게 살쪄서 나왔다. 예쁘면 좋지만, 맛이 더 중요하니까 괜찮다고 시식을 하기도 전에 셀프 위로 했다.. 이제 틀에서 잘 빼기만 하면 돼!


어랏! 손으로 마들렌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쏙 빠지는 게 아니라 윗부분만 떼어지고 반은 틀에 남아있었다.

이게 아닌데? 그럼 다음 거. 어머낫. 그럼 다음 거.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해서 레몬 마들렌은 모두 두 쪽으로 저며진 채 내 눈앞에서 배를 홀딱 홀딱 뒤집어 까고 누워 있었다. 속살을 훤히 보이면서….

창피해. 배 닫아, 이놈들아. 어떻게 하지. 이런 경험이 베이킹 초창기 때는 많았지만 오랜만인지라 잠시 멍했다. 자만했다. 그동안 빵이 다 성공적이었다. 당연히 버릴 수는 없었다. 밀가루도 유기농에 프랑스에서 수입한 재료, 그리고 버터도 레몬 버터, 설탕은 넣지 않고 레몬 커스터드를 넣었다. 바닐라 시럽도 넉넉히 넣고 거기에 병아리콩도 잘 삶아 추가해서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혹시라도 딸이 냄새를 맡고 이쪽으로 올까 주섬주섬 그릇에 담았다.


살려야 한다. 바로 응급 소생술 실시!

이런 경우 보통 나의 실패 메뉴얼 첫 번째 안- 티라미수를 만든다.      

1. 오목한 그릇에 부서져 부스러기가 돼버린 마들렌 몇 조각을 적당량 담는다.

2. 그 위에 카누 커피물을 촉촉이 뿌려준다.

3. 생크림이나 마스카포네 치즈가 있으면 좋지만 없는 경우 요거트를 덮어준다.

4. 코코아 가루를 그 위에 소복이 뿌리면 티라미수 완성.     


계획에도 없었던 요거트를 빨리 만들어야겠다.

원래 세상만사가 자만하면 망하는 법, 마들렌을 만들다가 겸손을 배운다.

그리고 망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롭게 재창조하면 된다.

끝이 좋으면 된 거다. 다른 사람 어느 누구도 모르고 피해 주지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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