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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06. 2024

노팅힐에서의 달리기!  비현실적이지만 좋았다.

달린 지 51분쯤 되었는데 갑자기 휴아저씨가 화면에 나왔다.

런던에 있는 노팅힐에서 내가 달리고 있었다.

바로 영화 <노팅힐>!

푸근한 인상과 조금 더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매력적인 휴 그랜트를 알게 해 준 영화다. 젠틀맨이라는 단어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휴 그랜트.

줄리아 로버츠는 그냥 막 예쁘다. 남들보다 주먹만 한 얼굴에 큰 입이지만 어쩜 그리 잘 배치가 되어있는지 줄리아가 한껏 씩 웃을 때면 내가 더 환해진다. 영화에서도 줄리아 로버츠는 우주 대스타로 나온다.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봤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노팅힐에서 서점(그것도 여행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휴 그랜트의 가게에 세계적인 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책을 사러 온다. 처음에는 그냥 손님이려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일을 보다가 잠시 2초 생각을 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녀를 바라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냥 넋이 나간 채 그녀를 보다가 책 추천을 하며 약간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녀를 그냥 보낸다. 휴 그랜트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모퉁이를 돈 순간 그녀와 부딪히게 되고 흰 티셔츠에 주스를 엎으면서 그의 집에 다시 가게 된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헤어지면서 짧지만 영원함을 암시하는 키스까지!     

“surreal but nice.”

비현실적이지만 좋네요     

휴 그랜트가 줄리아 로버츠와 헤어지면서 한 말이다.

비현실적이지, 그렇고말고. 만약 기차나 비행기 옆자리 빈자리에 한국의 휴 그랜트-공유가 앉았다고 상상을 해보자. 비현실, 초현실이지 않겠는가?     

비현실이 현실이 되는 영화!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이혼남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조금이라도 미리 알고 본다면 진부한 클리셰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두 주인공이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재회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평소에 하는 우리의 보통 말이지만 왜 더 특별하게 들리는지….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영국 발음까지  들을 수 있는 영화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명대사

줄리아 로버츠 (노팅힐 안나):

잊지 말아요. 나 역시 여자라는 걸, 한 남자 앞에 서서 사랑을 구하는.”     


그리고 내가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OST ‘She’라는 노래 때문이다.

엘비스 코스텔로라는 가수가 부른다. 가사도 좋지만 부드럽고 감미롭게 시작되다가 마지막은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걸 바칠듯하게 중후한 목소리로 내닫는다.

내가 좋아하는 가사 부분은

~ Me, I’ll take her laughter and her tears and make them all my souvenirs. ~

‘난 그녀의 웃음과 눈물을 가져다가 내 기념품으로 만들 거예요.’     

<souvenir>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좋다. 모르는 단어였는데 가사를 보고 따라 부르다 한 번에 기억하게 된 단어이다. 기념품. 그녀의 웃음과 눈물을 기념품으로 삼겠다니…. 슬픔과 기쁨을 항상 같이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기념품이란 주로 우리가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 간 기억을 간직하고자 고르고 골라서 산 작은 소품 같은 것을 말하지 않는가. 나는 딸과 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그림이 그려진 엽서나 마그넷을 사기도 하고 뮤지컬을 보면 머그잔을 꼭 기념품으로 손에 넣어 간직한다.

기억 속에 모두 담을 수 없기에 물건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것.

그만큼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기념품- souvenir.     


불현듯 내 인생을 통째로 기념품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크고 작은 일들, 그 사건 중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웃은 날도 운 날도 골고루 섞여 있다. 안 좋은 것들을 가려내 버리지 않고 엽서처럼 차곡차곡 모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쌓아 간직하려고 한다. 더 잊히기 전에. 혹시 아는가? 어느 날은 실제로 런던의 노팅힐 그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고 있고, 앞에 문득 휴 그랜트는 아니더라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영화보다 더한 장면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노팅힐에서의 달리기! 비현실적이지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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