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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May 31. 2024

굳어 버린 눈물, 그리고 베토벤

왼발바닥 아래 굳은살이 생긴 지 오래됐다. 처음에는 쌀알만 해서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도 걸을 때나 운동할 때 신경이 조금씩은 쓰였기에 손톱깎이로 도려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또다시 굳은살이 자라고 더 신기한 건 점점 범위가 더 커지는 것이었다. 양쪽 발바닥에 생긴 게 아니라 한쪽에만 생겼다는 건 잘못된 걸음걸이나 생활습관에서 왼쪽 발바닥 그 부근에 더 힘을 더 줬다는 것일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내 몸에 있다. 기타 줄을 잡는 왼손가락 끝에만 굳은살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집 같은 게 잡혀 있다. 기타를 연주할 때 그쪽에 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손가락이 짧고 아직도 초보이기 때문에 힘 조절을 못 해서 손가락 끝에만 힘을 잔뜩 준다.

또 다른 굳은살은 오른손중지 마디에 있다. 이것은 중학교 때부터 연필을 잡고 공부를 열심히 한 영광의 흔적이다. 이 굳은살은 이제 더는 신경 쓰이지도 거슬리지도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굳은살처럼 딱딱해 보이지만 막상 만져보면 이제는 야들야들해졌다. 더는 연필을 예전만큼 잡질 않으니 이제 주변의 멀쩡한 살들에 동화되어 닮아가나 보다.


겉으로 보이는 굳은살은 이렇게 신경이라도 써줄 수 있지만 사실 내 마음 주변 이곳저곳에는 주인도 알지 못하는  치료조차 받지 못한 상처가 많은 거 같다. 고름이나 상처의 딱지는 겉으로 보기엔 불결해 보이지만 적혈구와 백혈구가 세균과 싸워 다친 부분이 낫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세균이 침입했을 때 막아 내주는 백혈구가 세균을 퇴치하면서 죽어버리면 고름이 생기고, 딱지는 적혈구 속의 혈소판이 죽은 것으로 세균의 침입구를 막고자 생기는 것이란다. 상처가 좀처럼 낫지도 않으면서 고름도 딱지도 나지 않는 것은 백혈구와 적혈구가 활동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영혼 속에는 백혈구도 적혈구도 사라졌나 보다.


굳은살은 문제가 있고 상처가 있으니 몸의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고 심하면 병원에 가보라는 신호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내 몸은 이렇게 굳은살이라도 보여주고 있으니 잘 돌아가는 것 같다. 겉으로는 아무 흔적도 없고 고통도 없는데 깊은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눈물이다.


언제 눈물을 흘렸는지 기억이 없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공감 능력이 없어졌다.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내 글도 매우 딱딱하고 친절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카타르시스의 눈물이 아닌 차갑고 어두운 눈물을 흘린 적은 종종 있다. 가장 일이 많았고 몸이 힘들었던 그날, 내가 정말 미워하는 어떤 이가 많은 사람 앞에서 면박을 줬다. 그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만만한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그 사람 너무 싫다고, 안 보고 싶다고 폭폭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하지만 듣고 있는 엄마는 얼마나 듣기 싫고 힘들었을까? 이제 와 후회된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싫어하는 것이 눈에서 안 보이면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전자의 그 사람은 매일 본다. 그러니 더 힘이 든다.

왜 미워하는 사람으로 인해 눈물을 흘릴까. 그런 깨끗하지 않은 눈물은 흘리고 싶지 않다. 기쁨이나 감동의 눈물, 하다못해 슬픈 드라마를 보고 아줌마들처럼 눈물을 흘리고 싶다. 눈물이 백혈구와 적혈구의 치료과정이라면 울고 콧물 팽팽 풀어 미움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그때 좀 후련해질 뿐이지 좁쌀 알갱이만큼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냥 미움이 굳고 굳어서 굳은살이 되고 그 딱딱해진 미움마저 무뎌져서 연민과 동정으로 변화되면 좋겠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하는데 이젠 내 가슴 좀 어루만져 줘야겠다.

지금 라디오에서는 베토벤의 <월광>이 흘러나오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굉장히 격정적이다.

안 들리는 귀로 고독한 사랑과 쓸쓸함을 음악으로 노래한 베토벤이 좋다. 나는 마음의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알아주지 못했다. 그래서 눈물도 흘릴 줄 몰랐다.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깨끗한 정화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글을 더 많이 써서 내 마음을 순화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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