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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l 05. 2024

부자가 되려면 반드시 엑셀을 배워라

세이노의 법칙 중


수업이 오후 1시에 끝나고 책상에 앉아 바로 못다 한 공문처리를 해야 한다.

여름방학 동안에 학교 안에서 돌봄과 방과 후를 각각 몇 명이 하는지, 둘 다 다하는 학생은? 밥은 주는지, 몇 시간 학교에 머무르는지, 0시간~6시간까지 중에 어디에 속하는 지 등 등 일일이 숫자를 엑셀 파일에 기재해서 내야 한다. 마감 기한은 오늘까지였고 이미 한차례 반려를 당한 상태였다.


도전 정신과 약간의 반항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업무이다.


내가 일하는 학교는 큰 규모라 학생 수가 많다. 그래서 더 손에 식은땀이 나는 흥미진진한 공문이었다.

소신에겐 수식이 이미 세팅된 비장의 엑셀 파일이 있다. 고맙게도! 교육청에서 활용하라고 첨부파일에 같이 넣어준 자료이다.

돌봄을 하는 1학년 학생들의 명단을 한쪽 셀에 넣고, 방과 후 명단을 다른 쪽 셀에 삽입하면 돌봄을 하면서 동시에 방과 후를 하는 학생 수가 계산된다. 엑셀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로선 신통방통한 프로그램에 깜짝 놀란다.


가전제품을 사도 절대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던 내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번에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서 여러 통계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엑셀을 미리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종이에 끄적인 그림은 벤다이어그램이다.

예를 들어 돌봄을 하는 학생 60명, 방과 후를 하는 학생 44명, 둘 다 참여하는 학생이 21명이면 순수하게 돌봄을 하는 학생은 39명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철저한 문과생이라 단박에 계산이 되지 않아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면서 계산하니 술술 풀렸다.

간단 계산도 못해서 연필을 굴리고 그림까지 그리면서 업무 수행 중!

중고등학교 때 수학의 정석을 사서 풀면 유독 앞부분만 까맣게 때가 타는 그 부분이 벤다이어그램, 교집합, 공집합 1단원이었다. 지금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역시 배워두면 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 그럼 엑셀을 지금이라도 배우기 시작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해본다.      


가끔 학생들이 써먹지도 않는 수학 공식을 왜 배우냐, 나는 미국 안 갈 건데 영어를 안 배워도 될 것 같다는 등 공부하기 싫으니까 별의별 핑계를 다 지어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미리 보험금 쌓아두는 거라고 설명을 해준다. 내가 미래에 뭐가 될지 정확하게 예견할 수 없고, 언제 지금의 지식이 유용하게 쓰일 줄 모르니 조금씩이라도 할 줄 알게 미리 차곡차곡 저축해둬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보험금이 얼마나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지금 엑셀과 고군분투 중인 이 시간도 보험금이다. 못하지만 잘 하기 위해 매일 나가는 요가, 한달에 4번 배우는 기타도 언젠가는 쓰일 일이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고 독학하는 베이킹도 나에겐 큰 지참금이다. 영어 교사는 아니지만, 영어를 전공했기에 딸의 특급개인과외 선생님 역할을 잘 수행할 수도 있다.


결국엔 죽을 때까지 영영 쓰일 일 없어서 단 한 번도 사용 못하고 버려지는 공부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몸에 해로운 도박, 담배, 술도 아닌 지식인데! 일단 건드려 보는 것이다. 헛되이 시간을 버리는 것보단 손가락과 눈을 열심히 굴리고, 뇌를 가동하고 있는 나의 자세가 이미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의 교집합 영역을 넓히고, 어려운 인생의 계산식이 갑자기 나타나도 대입하면 척척 해결해내는 훌륭한 엑셀 프로그램을 성장시키는 중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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