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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l 10. 2024

비가 와서 좋은 점은 2가지뿐이다.

우리 아빠의 밭은 무사할까?

생얼이라 얼굴이 가벼워서 좋다.

매일 우산을 쓰고 집 밖에 나선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아침부터 내리쬐는 햇빛에 선크림은 필수였다.

오늘도 하늘에 먹구름이 무겁게 꽉 차 있다. 장마에 비가 억수같이 오니 화장은 필요 없다. 끈적거리는 자외선 차단제도 이제 해방이다. 나는 화장을 못 하기도 하고, 하는 것도 싫어한다. 얼굴에 팩을 붙이고 있는 거 같아 온종일 답답하다. 예전에 일했던 학원에서 화장도 사회생활을 하는 예절이라고 한 소리 들은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발끈했지만 요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고 얼마나 짜증을 많이 내고 다니는지 찡그리지 않아도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기초 화장품만 가볍게 바르고 용기 있게 출근했다. 장화를 신고 걷다 보니 빗줄기가 굵어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무섭게 내린다.

강한 빗줄기에 우산살 사이로 빗물이 떨어진다


문득 아빠의 밭이 걱정된다.

“아빠! 딸이에요!”

“웬일이야? 출근했어?”

“하는 중. 아빠는 식사하셨어요? 밭은 괜찮아요? 농작물 비 와서 다 고꾸라진 거 아냐?”

“괜찮아. 지금 또 나가봐야지.”


몇 시간 뒤에 아빠가 사진을 보내주셨다. 깜짝 놀랄 정도로 식물들이 잘 버텨주고 더 꼿꼿하게 서 있다. 수분 폭발로 싱그럽다 못해 초록색이 더 짙어 보이기까지 하다. 역시 아빠의 성격답게 한 줄 한 줄 정렬이 돋보이고 바르게 식물들이 줄지어 있다(아! 그러고 보니 아빠의 직업이 측량기사였구나!) 이파리 한 장마다 그리고 곱게 덮어준 비닐에 정성과 땀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우리 아빠 밭- 작품이다, 작품!

그때 눈에서는 눈물인지 모를 뭔가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산살 사이로 비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만큼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다. 겨우 직장에 도착해서 털썩 책상에 앉았다.


비가 오는 날엔 커피가 더욱 그윽하고 맛있다. 

이번엔 카누 2봉을 털어 넣고 물은 평소보다 적게 넣었다. 진하게 마시고 싶었다. 빗소리와 커피라.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여기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까지 보태진다면 너무 호사가 아닌가 싶다. 환상은 여기까지.


작년 또는 재작년부터 비가 너무 무섭게 내린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경고라 생각하니 내년에는 더 심해질까 걱정이 한가득이다.

비가 와서 좋은 점은 노메이크업과 쓰디쓴 커피 한잔일 뿐이다.

모두 비 피해 없이 이번 장마를 잘 넘겼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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