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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Jun 28. 2024

잘 넘어가지 않는 100% 무첨가 땅콩잼

내 눈물 같아


눈과 정신은 말똥말똥, 신경은 온통 냉장고 속 땅콩버터, 배가 고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음이 허한 건지 정말 배가 고픈 건지 정확히 구분은 되지 않는다.

지금은 밤 11시 30분 정도…. 지금 먹으면 살찔 텐데 하면서 또 어김없이 난 밥숟갈을 집어 든다. 나의 비상식량 땅콩잼을 두 숟가락 정도 가득 입속에 넣는다. 땅콩만 100%라서 꾸덕꾸덕하다. 냉장고에 보관 중인 피넛버터는 단단해져서 잘 퍼지지도 않지만 먹을 생각에 손가락이 하얘지도록 온 힘을 주고 숟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힘 있게 퍼 올린다. 그리고 입속에 한가득 넣고 조금씩 조금씩 입속의 온도로 녹여 삼킨다. 입에서는 잘 넘겼지만, 식도에서 한번 턱 막힌다.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지만 이 느낌을 좋아한다.  콩버터가 식도를 따라 겨우겨우 넘어가는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원래 내 인생과 비슷한 뻑뻑한 음식을 좋아한다. 밤고구마, 수분 쪽짠 요거트, 100% 땅버....


항상 밤 11시 30분에서 12시 정도에 한 번씩 깨서 땅콩버터로 식도 또는 위장에 땅콩기름을 발라줘야 잠이 온다. 포만감도 커서 배고픔은 사라지고 만족하며 잠을 청할 수 있다. 가짜 배고픔인데도 습관이 생겨 알아서 머리에서 위장으로, 위장에서 머리로 상호 신호를 보내나 보다.

오늘은 정말 배가 고픈 걸까, 아니면 마음이 헛헛한 거야?     


보통은 두 숟가락을 먹었지만, 오늘은 5스푼을 먹었다. 목이 더 메왔다. 꾸덕꾸덕, 찐득거리는 땅콩잼이 걸려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미련하게 넘겼다. 물은 마시지 않았다. 이렇다 죽겠다 싶을 때쯤 눈물을 쓸어 삼키며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목이 메 눈물이 나올 듯 말 듯할 때가 있다. 눈물을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옆 사람의 괜찮냐는 위로 한마디에 왈칵 쏟아지는 그런 날이 오늘이었다.

(국가기밀이라 눈물의 이유는 안 쓰련다.)


땅콩잼은 넘어가고 눈물은 나온 날. 울고 나니 조금은 후련했다. 땅콩잼도 잘 무사히 뱃속으로 넘겼다. 배고픔은 사라졌지만,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완전히 개운해지지는 않았다.


설탕이나 소금 각종 첨가물이 섞여 있는 땅콩잼은 부드럽다. 그리고 많이 퍼먹어도 목메지 않고 잘 넘어간다. 하지만 땅콩만 100%인 피넛버터는 처음 개봉하면 땅콩오일과 밑에 잼 부분이 분리된 경우가 있어 잘 저어서 먹어야 한다.

오늘의 눈물은 나도 모르게 소리 없이 조금씩 차올랐던 억울함, 허탈함, 실망감 등의 통제되었던 힘든 감정들이  냉담한 무관심에 땅콩잼처럼 굳어버려 쉽사리 흘러내리지 않았다 누군가 툭 건드려 주고 따뜻한 손길로 등을 어루만져 주고 나서야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정말 잘못하고 그 행동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면 죄송함과 민망함에 소리를 내 가식적인 눈물을 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나의 눈물은 100% 땅콩잼처럼 뻑뻑하게 굳어버린 눈물이었고 흘려보내기가 힘들어 더 괴로운 하루였다. 그런 눈물을 겨우 녹여서 쏟아낸 후 땅콩잼을 퍼먹고 나는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결론은 꼭 100% 무첨가 피넛버터를 드세요. 건강에도 눈물을 녹여주는 데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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