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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맘 Aug 01. 2024

전주 동물원 옆 전주 도서관

책 안 읽는 사람은 전주 도서관으로!

이렇게 푹푹 찌는 여름날, 딸과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주로 갔다. 1박 2일 딸과의 뚜벅이 여행길에 또 오른 것이다. 더워도 보통 더운 게 아니라서 이번 여름은 진정하고 집에 있자 했지만 한번 걸음을 뗀 뚜벅이 발이 멈출 줄을 몰랐다.

전주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한옥마을이지만 우리는 숙소만 한옥마을에 잡고 책만 보러 다녔다. 뙤약볕을 직통으로 맞으며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 길에서 초코파이와 십원빵을 먹을 무모한 도전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전주를 검색하니 도서관 여행이 많이 나왔다.

그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덕진공원 안에 있는 <연화정 도서관>이었다. 연못 한가운데 돌다리를 만들어 그 위에 도서관을 지은 건지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물 가운데 떠 있는 듯이 보였고, 임금님 아니면 신선들만 갈 수 있을 것 같은 쉽게 허락을 내어주지 않을 듯 꼬불꼬불 돌다리를 걸어서 입성했다.

에어컨 바람이 아주 시원해서 살 것 같았다. 전주국립박물관을 다녀온 터라 우리는 얼굴이 전주초코파이처럼 타들어 가고 있었다. 책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은 많았다. 무슨 책을 볼까 쓱쓱 훑으며 살펴보는데 제목과 책 표지부터가 납량특집다운 <저주토끼>!

유명한 책인지도 모른 채 읽어 내려갔는데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 신기해하며 검색을 해보니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작이라고 했다. 어쩐지 재밌더라니까! 제목과 표지만 보고 진가를 알아본 나의 안목을 칭찬한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사진도 찍고 센 에어컨 바람에 너무 추워 휴지로 코 핑핑 풀어가며 야곰야곰 열심히 읽었다.

“넌 뭐 읽어?” 옆에 앉아서 심오하게 읽고 있는 아이 책을 보니 <홍천기>.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시작한 드라마 책 읽기가 또 발동했다. 여기까지 와서 말릴 생각은 없다. 그래 읽어라.

저주토끼의 오싹함과 에어컨의 북극 바람을 더 쐬고 싶었지만, 우리가 예약한 펜션 체크인 시간이 다가와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

우리가 머물렀던 (전주아침스테이) 펜션이 너무 예뻐서 한번 들어간 이상 나오기가 싫었다. 오후 일정은 전동성당과 경기전이었는데 마음을 접었다. 그냥 우리 이번 전주 여행 주제는 도서관 나들이로 하기로 해!     

다음 날 아침 진격의 더위가 오기 전에 다음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산숲속 시집도서관>으로 갔는데 버스로 근처까지는 쉽게 갈 수 있으나 정말 숲 속에 있어서 또 땀 한 바가지 흘리고 갔다. 옆에는 호수도 있었고 위치는 정말 좋았으나 한여름에 도전하려면 나처럼 그냥 무모하게, 맨 정신으로, 어느 정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시집 도서관이니 정말 시밖에 없다. 다른 글도 잘 모르지만 시는 더욱 내 분야가 아니어서 무슨 시를 봐야 하나 손이 선뜻 책에 뻗어지질 않을 그때, 아는 이름 등장!

나태주 시인의 친필로 쓰인 시집 모음이었다. 익숙한 <풀꽃>이 없더라도 하나하나 필사해 가고 싶을 만큼 좋은 시로 가득 차 있었다. 시는 원래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한다는데 다음 도서관 일정상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도서관도 시처럼 아담하고 안도 조용해서 시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시는 <황홀극치>. 나도 ‘황홀하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좋아서 까무러칠] 때 쓰는 단어 황홀! 어쩜 이리도 잘 표현하였는지 정말 대시인이다.

지금 딸과 전주에서 도서관 여행이 까무러칠 정도의 황홀!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순~뻥이고,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행복했다. 마음이 편안했고 지금 이렇게 평화롭고 한가롭게 시를 읽을 수 있는 것을 하늘에 부모님께 딸에게 나에게 감사해했다.

앞에 있는 딸은 또 뭐 하나 몰래 봤더니 {엄마 신속 안정 부적}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화가 났을 때 쓸 거란다. 만화로 된 시집에 있는 걸 보고 써먹으려고 앞에 놓여 있는 빨~간 색 색연필로 부적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내 이마에 붙이는 일이 없길 기도해 본다.


스머프가 곧 튀어나올 듯한 숲 속 도서관을 나오기 싫었지만, 다음은 전주시청 안에 있는 <책기둥 도서관>이었다. 딱 들어가자마자 떠오르는 이미지는 서울 코엑스의 별마당 도서관이었다. 1층 로비를 도서관으로 꾸미고 중간중간 천장까지 뻗어진 기둥에 책이 빼곡히 차 있었다. 매달린 전등과 책들 그리고 밤색의 책꽂이가 잘 어우러져 나는 해리 포터 배경 같아!라고 했지만 연우는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또 이 많은 책들 중 뭘 봐야 하나 고개를 위아래로 운동하던 중 <김미경의 마흔 수업>. 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는데 드디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김미경 선생님 참 대단하다. 유튜브로 몇 번 잠깐 보기는 했으나 구독을 꾹 눌러줘야겠다고 이 책을 읽고 결심했다. 

나와 같이 마흔이 넘어가는 이즈음에 불안하고 흔들리는 심정을 뜻하게 헤아리고 어루만져 주는 글들로 꽉 차 있었다.

인생을 다 살지도 않았는데도, 마치 3~4번은 인생을 산 것 같은 답지와 인생 해설집 같은 글에 믿음이 쏙쏙 갔다. 이 책도 너무 재밌어서 화장실도 참고 완독했다.

“넌 뭐 읽니?” 딸 보니 <오만과 편견>을 읽다가 <제인에어>를 읽다가 <해리포터>로 돌려 읽기를 하고 있다. 그게 가능해? 시청이라서 조용하고 엄숙함 같은 건 없다. 자유롭게 사람들 이야기하고 어떤 아저씨는 유튜브를 소리를 키우고 시청하고 있었다. 그래도 워낙 흡인력 있게 쓰인 글이어서 방해는 되지 않았다.

나 이렇게 책 잘 읽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전주에 오니 책일 술술 잘 읽혔다.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여기 더 머무르느냐 아님. 한 군데 더 가느냐 고민을 하다 계획 밀어붙여! <금암도서관>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전주에 와서 택시는 처음 탔다.


버스가 자주 다니고 가려는 곳이 근처에 모여 있어서 이동이 수월했지만, 날씨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택시로 이동하고 내보니 금암도서관은 어느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걸어왔으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다. 금암도서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서관의 구조이다. 그런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책도 많았고 내부 디자인도 세련됐다. 책 또 뭐 보지? 약간 눈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시간도 얼마 없으니 얇은 책이나 보자 하다가 나도 모르게 두꺼운 1Q84를 골라버렸다.

갑자기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너 중 가장 두꺼웠고, 유명한 책이지만 읽어보지 않은 부끄러움 때문이었으리라. 역시 재밌었다. 더위를 피해 온 동네주민인지, 도서관이 유명해서 나처럼 구경하러 온 이들인지 앉을 곳 찾기도 어려워 겨우 비집고 앉아 읽었는데 이 또한 재밌었다. 이래서 유명하구나…. 내가 읽은 곳은 야나체크라는 작곡가가 나오고 편집자와 작가가 어떤 여고생의 작품을 대신 써서 완성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부분까지 아주 짧게 읽었지만, 단숨에 매료되었다. 더 읽고 싶었지만 떼어지지 않는 엉덩이를 겨우 일으켜 책을 정리했다. “넌 뭐 봤어?” 딸은 <어린이 관용구>와 <어린이 사자성어>를 읽고 있었다. 만화책이지만 좋은 책이니 인정한다.


<저주 토끼, 나태주 시집, 김미경의 마흔 수업, 그리고 1Q84>를 만나게 해 준 전주의 도서관들.

이 책을 또 읽게 된다면 전주가 떠오를 것이다. 원래 나는 진득하게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인데 신기하리라 만치 몰입을 해서 읽었던 시간이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저주 토끼와 1Q84를 집에서 읽는다면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까? 이 책들을 읽으러 전주에 다시 와야 하나 엉뚱한 얘기를 나누며 연우와 나는 버스에서 전주에서 읽은 책 얘기를 하다가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미친 더위에 전주 동물원 아니고요, 전주도서관에서 책만 읽다가 돌아온 참 알차고 알찬 시간이었다.

경기전, 전동성당 못 가서 후회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뿌듯함은 백점이었다.

책은 읽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전주도서관으로 가서 눈감고 아무 쪽으로 손을 뻗으면 인생 책을 만나는 행운을 나처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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