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곳에서 나는 왜 방황하는가
꿈꾸던 외국계 기업에 입사한 지 이제 3년 차가 된다. 2년 10개월 동안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마법처럼 3년 차가 되면서 마음 한편이 공허해진다. 이렇게 3년마다 위기가 찾아오나 보다.
많은 연봉은 아니지만 좋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갖고 있는 회사이다. 코로나로 힘든 사람이 많은 요즘에 누군가는 일하기를 꿈꾸는 곳이고, 3년 전의 나도 그런 누군가였다. 그랬던 나는 제 몫을 하는 한 명의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일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한 명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은 새롭거나 설레지 않는 일이 되어 버렸다. 공장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특별한 생각 없이도 몸이 먼저 움직여서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기존에 정립되어 있던 Process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에도 지쳐버렸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윗분들의 관점에 따라 내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어 버린다. 내가 장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여도, 상급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할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만들고 싶었는데, 상급자는 저렇게 만들기를 원한다. Process를 개선하는 일은 기존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게 된다. 그러한 반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근거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때로 Process 개선에 의한 이득보다 더 큰 노력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이걸 왜 굳이 하려고 해? 하는 반응이 따라온다.
이 둘은 달라 보이지만 같은 이유로 발생한다. "내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그건 맞지 않아". 어떤 논리와 근거를 준비해도 윗사람들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그 말에 근거가 붙어 있지 않아도 나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두가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논거를 준비하면 되겠지만, 모든 일에 그러한 논거를 찾으면서 굳이 일을 해야 할까? 3년 차의 나는 내 일은 할 수 있지만, 내 일만 할 수 있는 그 사이에 존재한다.
이제서야 다른 분들의 조언이 떠오른다. '어차피 회사 일. 짧게 일, 이년 일할 것 아닌데 너무 서둘러서 일하지 마라', '네가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을 윗사람들에게 보이지 마라'. 그때는 타성에 젖은 옳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삶의 연륜으로 느껴지는 현실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