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편 : 리폼이 불러낸 새로운 나

by sunny

끝없는 살림과 육아 속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아내, 엄마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정작 ‘나’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리폼.
낡은 서랍에 페인트를 칠하는 순간,
잊고 지내던 나 자신을 불러내는 듯했다.
거창한 도전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작업을 마친 가구를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정말 예뻐요!”라는 짧은 댓글 하나가
그날 하루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내 안을 따뜻하게 채워갔다.




나는 어느새 리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새벽잠을 줄이고 옥상에 올라가
오래된 가구를 사포질하고 페인트를 칠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낡은 것들이 새롭게 변해가는 모습에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예전에는 약간의 소비벽이 있었지만,
리폼을 시작한 뒤로 홈쇼핑도 끊고
더 알뜰해졌다.
리폼은 내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2006. 10. 식탁 및 의자 리폼


그 당시에는 시아버님이 살아계셨다.
시부모님 방 벽지를 모두 뜯어내고
친환경 페인트로 새롭게 칠해드렸다.
오래된 식탁에는 나무결이 살아 있는 패널을 붙여
산뜻하게 변신시켰다.

우중충하던 집안이 하나둘 밝아지자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던 가족들도
차츰 기뻐하며 내 리폼을 응원해주었다.

리폼은 내 삶을 바꾸는 문이 되었다.
블로그는 또 다른 집이 되었고
사람들은 나를 ‘파워블로거’라 불렀다.
잡지와 방송에 불려 나갔고,
내 이름으로 책 한 권까지 세상에 내놓았다.




그 순간,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석자가
빛나는 걸 느꼈다.
내 이름은 신선 선(仙), 빛날 희(熙).
“우리 선희는 크게 될 거야”라던
아버지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품었던 인테리어의 꿈,
그 십대의 꿈을 나는 이십 년이 지나
삼십대 후반에 비로소 이루어냈다.

리폼은 단순히 가구를 고치는 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나 자신을 고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삶은 언제든 다시 칠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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