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서 배운 삶의 균형, 그리고 쉰네 살의 선택
내 부모님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군무원이셨고,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셨다.
군무원 박봉과 농사로 얻는 수입만으로 사 남매를 키우는 일은 늘 빠듯했다.
성실했지만 ‘폼생폼사’였던 아버지는 친구의 빚보증을 섰다가
결국 빚 독촉과 최고장이 우리 집으로 날아들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직장에 계신 동안 어머니는 집에서 온갖 시달림을 받으셨고,
사 남매를 키우면서 돈이 급히 필요할 땐 옆집 아주머니께
죽기보다 싫은 “돈 좀 꿔달라”는 부탁을 해야만 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의 어려운 살림살이는 나를 바깥세상에서 위축되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라도 사 먹을 때면 주머니 사정 때문에 늘 꽁무니를 뺐다.
부모님의 가난은 의도치 않게 자식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가난 속에서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은 사 남매 모두를 대학 문턱 안으로 들여놓으셨다.
전문대학, 대학교, 대학원까지 자녀들을 공부시키려는 바람 때문에 빚은 더 늘어갔지만,
부모님은 끝내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도 그 기대 속에서 자라며, ‘나 하나라도 덜 부담을 드리자’는 마음으로
집 가까운 국립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사실은 실내디자인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사정을 생각해 아버지가 권해주신 컴퓨터 관련 학과를 선택했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며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하고 컴퓨터학원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컴퓨터를 전공한 덕분에
나는 블로그 운영에도 쇼핑몰 운영도 좀더 수월했던 걸 안다.
1990년대, 지방 소도시의 컴퓨터학원 강사 월급은 참으로 적었다.
일한 시간에 비해 받는 돈은 민망할 정도였고,
용돈만 조금 떼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드렸다.
그 시절에는 브랜드 옷 한 벌 장만하는 것도 어려웠다.
90년대 말, 나는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했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남편이 투자했던 주식이 폭락해 빚을 떠안고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신혼 어느 날, 남편이 나를 앉혀놓고 ‘재산 브리핑’이 아니라
‘빚 브리핑’을 했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월급만으로는 살림이 어려워 마이너스 통장을 쓰며 버텼고,
매일 적어 내려가던 가계부를 빚이 줄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나 어느 순간 덮어 버렸다.
그 이후로 가계부를 15년 가까이 쓰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경제관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았지만, 나는 투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벌어다 준 만큼, 벌린 만큼 쓰면 된다.” 그것이 내 방식이었다.
목공방도 하고, 쇼핑몰도 운영했지만 나는 큰돈을 벌려는 욕심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다 2020년, 다시 계약직으로 취업하면서 가계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월급이 통장에 쌓이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고,
적어도 내가 번 돈을 지켜내고 싶었다.
작은 돈 하나라도 아껴 쓰며 저축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돈을 어떻게 불려 갈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경제 공부를 시작했고, 투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작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자 공부를 시작했으니 벌써 1년을 넘겼다.
그동안 꾸준히 경제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늘 후회되는 한 가지가 있다.
예전엔 남편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보면 좋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지만,
나는 그건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며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남편의 말을 조금만 귀 기울여 들었더라면
우리 가정의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놀라운 건, 지금은 내가 배운 투자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전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돈이 불어나는 재미가 생기고, 경제 공부가 즐겁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돈과 행복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느냐?”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돈과 행복, 둘 다 원해요.”
돈은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한 토대다.
나는 그 돈을 벌고 불려 가는 일을 즐겁게 여기고 있다.
내 나이 쉰네 살, 곧 계약직 일을 마치게 되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쉰네 살 아줌마를 기꺼이 써줄 직장은 많지 않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제 누군가 불러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를 불러서 나를 고용할 것이다.
내가 사장이 되고, 내가 직원이 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다음 이야기 예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술이 낯선 중년의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9편에서는 **‘감성과 기술의 균형’**에 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