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은 꾸는 것만으로도 꿈이다.

엄마가 된 앨리스

by 순심

2014년 봄.

내가 나를 위로하기로 했다.

내가 더 삐딱해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초등학교 때 나는 일기장이 두 권이었다.
선생님께 보여드릴 일기장 한 권과 나만의 비밀 일기장 한 권.
한 권은 열심히 꾸며 써야 하는 일기장이었고, 또 다른 한 권은 내 성장통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이었다.
나는 두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일을 즐겼다. 아무 때고 틈틈이, 어느 날은 여러 장씩 빼곡하게.
덕분에 한 권은 종종 내게 칭찬과 상장을 안겨주었고, 또 한 권은 어린 시절 내 상처를 토닥토닥 치유해 주었다.

나는 무언가를 끄적거릴 때에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그래, 뭐라도 쓰는 것을 배워야겠다.’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문화센터의 <동화 쓰기> 수업을 등록했다. 경기도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 살다 보니 수강생은 네댓 명뿐인 매우 조촐한 수업이었지만, 등록을 하고 돌아오던 날 나는 무척 설레었다. 마치 벌써 작가라고 된 양.


생선을 두어 마리 구워 아이들 살을 발라주고 나면 내 몫은 남는 것이 없었다. 눈치 없는 남편은 조금 남은 살점마저도 제 입에 넣기 바빴다.

아이들은 철마다 새 옷을 사 입히고 싶어 동네 맘 카페의 공구 소식을 빼놓지 않고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내 속옷 하나 예쁜 것을 사 입는 것은 아까웠다.

숲유치원에 다니던 녀석들의 얼굴이 새카맣게 타는 것이 안타까워 아이들 피부에 좋다는 저자극 선크림은 직구까지 해 가며 사다 나르면서도, 내 얼굴에 기미가 검버섯처럼 번지고, 늘어나는 흰머리가 부스스한 곱슬머리에 뒤섞여 까치집을 짓고 있다 한들, 아이들을 맡기고 미용실에 오랜 시간 가 앉아있을 여유가 없었다.

딱 그런 때였다. 2014년 봄은.


그러던 때에 일주일에 한 번 <동화 쓰기> 수업은 내겐 숨통이었다.

내가 위로받는 시간.

오롯이 내가 그저 나인 시간.


두 녀석을 겨우 씻기고 재우고 난 뒤, 매일 밤 허탈함에 습관처럼 마시던 술.

그 술 한 잔 대신, 나는 조용한 밤, 끄적끄적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두 아들들과 나누던 대화, 녀석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눈, 엉뚱한 상상과 뭉클했던 속삭임들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꼭 작가로 등단을 해서 내 이름 석자가 쓰인 책을 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와 무슨 문학소녀라도 된 양,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잰 척을 하고 싶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고.


꿈은 꾸는 것만으로도 꿈이다.

그 꿈이 내겐 숨통이고, 위로였다.


내 마음에 대한 공감과 위로는 내 몫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왜 나에 대한 배려와 나를 위한 희생은 없는 것이냐고..

타인을 향해 그런 악다구니를 쓴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은 내가 아니니까.

그것은 나를 향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를 더 위로하고 다독일 수 있게.

내가 나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나는 그렇게 토닥토닥, 쓰담쓰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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