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다리와 80년대의 위화감

-정치키드(2)

by 채송이

1979년 10월 27일, 국민학교 5학년이던 나의 열두 살 생일 아침이었다.


생일 미역국을 먹고 있는 엄마 옷가게 안쪽 작은 단칸방까지, 세상의 모든 소문은 기어이 찾아왔다. 가게 문을 열다 만난 옆집 신발 가게 아저씨, 앞 가게 과일 아줌마가 서로에게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내 삶에 '정치'는 지구 반대편 이야기처럼 무관한 영역이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당연히 그 '한 사람'이었고, 그의 죽음이 어떤 역사적,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나는 아무런 감각도 가질 수 없었다. 그저 시끄러운 잔치나 공포 영화가 끝났다는 느낌 정도였달까.


그리고 그해 겨울, 내가 사는 섬에 육지와 연결하는 두 번째 다리가 개통되었다. 지금이야 고작 지방의 다리 개통식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당시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재임 기간을 보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대통령 자리를 지킨 사람일 것이다. 마치 '바통 터치'를 위해 잠시 섰던 사람처럼.)


많은 섬 주민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찬 바람을 맞으며 그 대통령과 함께 새로 만들어진 다리를 걸었다. 겨울 추위에 볼이 어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떼를 지어 다리를 걸어갔던 12살의 나와 주민들. 흐릿한 영화 속 필름 같아 모습은 뚜렷하지 않지만, 그 겨울 추위를 물리치던 환호와 들뜬 분위기는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다리는 지금도 우리 섬의 중요한 인프라로 남아, 주기적으로 안전진단을 받으며 지하철을 타러 나갈 때나 백화점 나들이를 갈 때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 조용필과 체육관 선거


1980년, 나는 6학년이 되었다.


저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더라는' 흉흉한 소문들을 들었다. 그리고 곧 새 대통령이 체육관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대대적인 축하 쇼를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다.


당시 나는 내 인생 처음이자 유일한 '덕질'에 빠져있던 가수 조용필이 축하 쇼에 나오는지 눈이 빠지게 지켜보았다. 그러면서도 세상 화려하고 즐겁고 희망찬 메시지로 가득한 TV 속 축제 분위기가 왠지 거짓말처럼 역겹게 느껴진 것 같다.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했지만,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을 것이라는 본능적인 거부감 같은 것을 느꼈다. 텔레비전이 아무리 행복을 '주입'하려고 해도, 어린 나는 이미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철딱서니 없이 친구들과 찧고 까불던 중학생이 되었다.


국민학생 딱지를 떼고 교복을 입자, 뭔가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졌다는 '허세' 덕분인지 중학교 시절은 모든 것이 참 즐거웠다.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와 때로는 열심히, 때로는 재미있게 가르쳐 주시던 모습.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 버스를 타고 다니며 만나던 근처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을 보며 느끼는 묘한 동질감.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달래며 그때 마침 시작한 프로야구 중계 볼 생각에 들떠 버스를 기다리던, 몸보다 한참 큰 교복을 입은 내 모습. 14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저 평화로웠다.


철없이 평안하게 살던 중학생 시절의 나에게도,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리는 경험이 한번 있었다.


5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사회 선생님이 수업 중에 우연히 지나가는 말처럼,

"전두환 대통령이 참 고마운 사람이지"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교사이고 경상도 사람인 그에게 당시 대통령은 불순한 폭도들을 제압하고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통제된 언론과 빈약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말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다.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저것은 진실이 아닐 거야'라는 마음속의 작은 목소리. 아마도 그 순간이 스스로 나의 정치적 성향을 인식한 첫 시작이 된 것 같다. '다름'을 인지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진보의 첫걸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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