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선물 보따리

-정치키드(3) -교복 자율화와 과외 금지

by 채송이

셀프 개헌을 통해 7년짜리 대통령이 된 그는, 쿠데타로 집권한 후 국민들의 저항과 불만을 선제적으로 잠재우기 휘애 여러 개혁 조치들을 쏟아냈다. 그중 일부는 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학업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부족한 기억력으로 더듬어 보면, 당시 그는 '개혁 조치'라는 이름의 '선물 보따리'를 국민들 앞에 풀어 놓았던 것 같다.


첫 번째 선물은 '과외 금지'였다. 교육 기회 평등을 목표로 내세우며 개인 과외를 전면 금지하고 학원 운영도 제한했다. 나처럼 부모님이 과외는 언감생심, 학원 보낼 돈도 없었던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오직 학교 공부로만 승부를 봐야 했으니 이론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정책이었다.


하지만 모든 강제된 정책이 그렇듯, 현실에서는 음성적인 비밀 과외가 성행했다고 한다. 고3 때 집안 형편이 가장 좋았던 것으로 짐작되던 반 친구가 같은 학교 수학 선생님에게 몰래 과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어렴풋한 기억이 난다. 특혜는 항상 비밀스럽고 교묘한 경로를 찾아 흘러가는 법이니까.


두 번째 선물은 '교복 자율화' 조치였다. 중학교 입학 후 딱 1년 입었던 교복을 다음 해부터 입지 않게 되었다. '자율화'라는 이름이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사복을 입고 다녔던 것 같다. 학생들의 자율성 확대라는 목표를 가진 일방적 정책은 나처럼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모든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지만, 등교할 때마다 '오늘은 뭘 입지?' 하고 옷 걱정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학력고사와 소박한 성공


당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학력고사를 봐야 했는데, 이것 역시 1981년 전두환 정부의 교육 정책임을 새삼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가 있었지만, 이 정책 시행 후 전국 공통 시험인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줄을 세워 원하는 대학에 진학이 가능해졌다.


과외를 금지하고 대학 입학 전형을 단일화해준 덕분에, 나는 조금은 수월하게 등록금과 기숙사비가 거의 무료로 제공되는 국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원하는 대학에 갔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독재자의 정책 덕분에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탈 수 있었던, 아이러니하고 소박한 성공이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독재자가 저지른 만행을 단죄하고 알리기 위해 인생을 건 저항과 민주화 투쟁을 했을 터이다. 시위 도중 여학생을 경찰관이 성고문했다든가, 5.18 광주 학살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며 일어난 미문화원 방화 사건 등, 수많은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뉴스들을 그저 '흘려들었을 뿐', 깊은 의미를 알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늘진 국어 선생님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은 학교였다. 고등학교 선생님들 중 몇 분은 대학 때 민주화 운동을 했다더라, 그래서 공무원 취업이 안 되어 사립학교에 왔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분들이 수업 중에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어떤 진실, 가슴 속에 묻혀있는 울분 같은 것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당시 20대 후반쯤으로 추정되는 국어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서울 유명 대학을 졸업하셨다는데 수수한 옷차림에 얼굴은 항상 조금 그늘이 져 있었고 피곤해 보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눈빛과 목소리만은 다정했고 수업을 재미있게 하셔서 나는 그 선생님 수업을 매번 기다렸다.


수업 중간에 잠시 틈이 생기면 선생님은 대학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는데, 자신이 연극부 활동을 정말 재미있게 했고, 직접적이진 않지만 운동권이었다는 뉘앙스를 담아 지금 정권이 어떤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넌지시 알려주려 하신 것도 같다. 덕분에 나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연극부 동아리실을 찾아가 능력도 안 되는 연극부 생활을 4년 내내 하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선생님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무도한 시대를 버티며 밥벌이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현재도 2천명이상이 사망했을거라 보도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

트럼프의 무도함에 저항하는 미국 시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들이 매일 보도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듣고 넘길 수가 없는데

당시 젊은 지식인이었던 선생님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분노를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순진한 눈으로 교실에 앉아 그저 멋지게만 보이던 선생님들의 대학 생활을 동경했던 그 시절의 나는 또 얼마나 철이 없었나? 현대사의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그 참혹한 사건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나이 들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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