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키드(4)
신입생들 사이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 독서 모임—주로 사회학과나 사학과 선배들이 주축인—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고, 뉴스에선 연일 시위 소식이 들려왔다. 박종철, 이한열... 그 꽃 같은 이름들이 뉴스 앵커의 건조한 입을 통해 부고로 전해지던 시절이었다.
독재의 종말이 머지않은 듯했다. 마침내 6.29 선언이 터져 나왔고, 거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아니, 그랬다고 한다.
'그랬다고 한다'라고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 역사의 현장에 없었으니까.
수도권도 아닌 지방, 그것도 구석진 국립대 기숙사에 처박혀 연극부 활동에 미쳐 있던 나는 낮에는 대사를 외우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셨다. 남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화염병을 들 때, 나는 '해방감'이라는 이름의 술잔을 들고 촐랑거렸다. 뒤늦게 영화 <1987>을 보며 펑펑 울었지만, 그건 너무 늦게 도착한 부채감이었다.
그때 시민들은 떡을 돌리고 공짜 밥을 나누며 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축했다고 한다. 지금 광장의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그 세련된 시민의식의 '베타 버전'쯤 되었을까.
하지만 독재자는 영악했다. 전두환의 절친이자 쿠데타 동업자 노태우는 007 가방을 들고 나타나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 칭했다. 쿠데타 주역이 보통 사람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코미디였지만 그 마케팅은 제법 먹혀들었다.
갓 스무 살, 지방 국립대 기숙사 4인실은 나의 해방구였다. 기숙사 방의 라디오에서는 매일 <사랑이 지나가면>이나 <광화문 연가> 같은 당시 최고 히트곡이었던 이문세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제주, 대구, 이천, 그리고 부산 출신의 내가 섞인 그 방은 매일이 수학여행이었다. 그중 제주의 왕언니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입학한 늦깎이였는데, 기타를 기가 막히게 쳤다.
언니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면 묘하게 서늘한 그늘이 느껴졌다. 그때는 몰랐다. 언니의 고향 제주가 품은 4.3의 비극과, 바다 건너 광주의 5.18이 언니의 손끝에 묻어 있었음을. 나는 그저 가족의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에 취해 비틀거리는, 참으로 눈치 없고 해맑은 신입생일 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지성인이라고, 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는 결렬됐고, 선거 직전 터진 KAL기 폭파 사건은 공포를 자극했다. '설마' 했다. 젊은이들이 피로 사 온 직선제인데, 설마 또 군인에게 표를 주겠어?
운명의 개표 방송 날.
기숙사 방에 옹기종기 모여 라디오에 귀를 박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노태우 당선 확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강의를 들으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가슴속엔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답답했다.
세상이 왜 이럴까. 왜 사람들은 또다시 군화를 선택했을까.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어둠 속에 있어야 할까.
기숙사 식당의 풍경은 기괴했다. 수백 명의 학생이 밥을 먹는데, 말소리가 없었다. 오직 달그락거리는 식판 소리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뿐. 그 무거운 침묵은 내 생애 가장 맛없는 아침 식사로 기억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임기가 5년 단축된 것뿐.
그 5년 동안 나는 어영부영 졸업을 했고, 운 좋게 취업도 했다. 첫 월급의 달콤함에 빠져 세상 돌아가는 꼴을 잊고 지낼 무렵, TV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구국의 결단."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이른바 3당 합당이었다.
평생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이 군사 정권의 손을 잡았다. 배신자라는 욕설과 현실적 선택이라는 변명이 뒤섞였다. 반면 김대중은 홀로 남아 '지조'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어 치러진 14대 대선. 여당의 프리미엄을 입은 김영삼(YS)이 당선됐다.
직장인이 되어 출장을 다니고 회식을 하며 바쁘게 살던 나는, YS가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때 물개박수를 쳤다.
"거 봐,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거라니까!"
그는 사상 최초의 문민정부 대통령이었고, 개혁의 칼날은 매서웠다.
하지만 어떤 명분으로 포장해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그는 군사 정권과 야합해 권력을 잡았다는 것.
그 꼬리표는 그의 개혁이 빛을 발할 때조차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정치적 패배감과 뜻밖의 개혁이 주는 카타르시스 사이에서 어지럽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