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저금통과 황금 송아지

정치키드(5)

by 채송이

김영삼 정권의 말로는 쓸쓸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대가는 혹독했다. 국가 부도, IMF 구제금융. '무능'이라는 단어가 굴욕적인 낙인처럼 찍힌 채 정권이 저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라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등장!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외양을 썼으면서도 수십 년간 여당만 집권해 왔으니, 사실상 우리는 '무늬만 민주국가'에 살았던 셈이다. 당선자 김대중은 취임 전부터 TV 속에 살았다. 금을 모으고, 외채를 갚고, 국정을 다잡기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퍽 영특해 보였다. 사실 그때의 나는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 이력을 깊이 알지 못했다. 그저 "듣던 대로 참 똑똑한 사람이네" 정도의 인상을 받으며, 전쟁 같은 맞벌이와 육아의 틈바구니에서 하루를 버텨낼 뿐이었다.


90년대 후반, 결혼과 동시에 우리 부부에게 남겨진 건 번듯한 아파트 한 채와 상상을 초월하는 대출 금리였다. 경제관념은 희박했고, 공무원 맞벌이라는 안정감에 취해 있었다. 월급의 태반이 은행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새집이 주는 안온함에 취해 두 아이를 낳고 소시민의 삶을 꾸역꾸역 이어갔다.


변화는 안방에서부터 시작됐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 활동을 했던 이른바 '운동권' 남편 덕에 내 시선도 자연스레 텔레비전 너머 정치판으로 향했다.

남편은 노무현의 광팬이었다. 부산에서 그의 선거 유세가 있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다.


'호남당'이라는 고립된 섬에 갇힌 민주당 후보가 영남이라는 거대한 벽에 끊임없이 몸을 던지는 광경. 부산시장, 국회의원, 결과는 매번 낙선이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류와 타협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우직함. 그 신념에 대한 애틋함은 그때 내 마음에도 깊은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2002년, 기어코 기적이 일어났다. 희망돼지저금통에 동전을 채우던 사람들의 간절함이 그를 청와대로 보냈다. 투표의 효능감이 정점에 달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시대는 평온하지 않았다. 거대하고 견고한 기득권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대가는 참혹했다. 언론은 그의 말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 '품격'이라는 잣대로 그를 난도질했다. 급기야 야당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연일 이어졌고 거리에서 울먹이던 한 노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우리가 어떻게 뽑은 대통령인데…."


그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모아 세운 대통령이었다. 다행히 탄핵은 기각되었고 그는 직무에 복귀했지만, 임기 내내 그가 견뎌야 했던 멸시와 모욕은 도를 넘어서 있었다. 세상 모든 불행의 끝엔 "이게 다 노무현 탓"이라는 조롱 섞인 밈(meme)이 따라붙었다.


기득권의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고 단단했다. 그 틈을 타 '부자 되세요'라는 주술이 온 나라를 휘감았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 대국 10위 진입과 GDP 2만 달러 돌파라는 성적표를 냈음에도, 미디어는 오직 '경제 폭망'이라는 프레임만 재생산했다. 그 허기진 욕망 위에 이명박(MB)이라는 인물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흙수저 출신 대기업 회장, 청계천 신화. 그는 마치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구세주처럼 포장되었다. 전과 14범이라는 꼬리표조차 "내 집값만 올려준다면 도둑놈이면 어떻고 사기꾼이면 어떠냐"는 천민자본주의적 논리 앞에 무력해졌다. 광기에 가까운 열풍이었다.


당시 내가 존경하던 한 직장 선배는 무척 합리적인 지식인이었지만, 주식 투자로 잃은 1억 원 앞에서는 평정을 잃었다. 대선 직전, BBK 실소유주 의혹을 뒷받침하는 '광운대 강연 영상'이 터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결정타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선배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이명박이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 투표하러 가야겠다. 걔가 주가 3,000 찍어준다고 했거든."


결국 표심은 진실이 아니라 욕망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는 마음으로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몸을 던졌다. 4대강 개발, 자원외교, 방산비리라는 무수한 의혹을 남긴 MB 정권 5년의 시작이었다.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풍요로워졌는지에 대한 대답은 유보된 채, 정치는 다시 차가운 겨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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