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션그래픽 분야로 취업준비를 한창 할때다. 레퍼런스 영상을 보기 위해 Vimeo와 국내 최대 모션그래픽 커뮤니티의 Q&A 게시판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때 자주 올라오던 질문은 역시 비전공자라는 키워드로 시작되는 질문들이었다. 나 역시도 비전공자였기에 그들의 고민에 한껏 공감을 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어느 누구도 쉽사리 “비전공자는 절대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늦은 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하라고 말했다. 그런 댓글을 보면서 나도 노력하면 모션그래픽 디자이너가 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얻었다.
면접 당시, 비전공자인데 괜찮겠냐는 질문에 잔뜩 긴장한 기억이 난다. 제일 두려웠던 질문이었다. 그 핸디캡을 발판 삼아 끊임없이 노력하리라 당당하게 말하긴 했지만 내심 속으론 불안하긴 했었다. 다행히도 면접에 통과되어 지금까지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살고 있지만 그때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실무 경험이 쌓일수록 비전공자라는 타이틀은 점점 옅어졌지만, 나를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실 취미로 디자인을 하는 것과 업으로 디자인을 하는 건 매우 다르다. 제일 큰 차이는 고객의 여부. 취미로 하는 디자인은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에 가깝지 않을까. 디자인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니즈를 만족시켜야 한다. 디자인을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되었든, 디자인이 반영되는 제품의 최종 소비자가 되었든. 디자인은 예술이 아닌 비즈니스다.
그래서 디자인은 꼭 미적 감각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달까. 왜 이런 타이포그래피를 사용했는지, 왜 이런 컬러를 썼는지, 왜 이런 레이아웃으로 배치한 건지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가독성을 위해서, 혹은 타깃 소비자의 연령대를 고려해서, 제품의 콘셉트와 통일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들 말이다. 무조건 예쁜 디자인이 최고는 아니다.
어쩌면 비전공자이기에 다양한 시선으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이점도 있다. 더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졌을 수도 있고, 디자인 이외의 관점에서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 전공 여부보다는 얼마나 감각이 있는지, 얼마나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결과물로 반영하는 지다.
근래에 4개월 만에 디자인으로 취업시켜준다는 교육기관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물론 그 교육기관에서 좋은 커리큘럼으로 잘 가르쳐 주겠지만 사실 디자인은 툴을 배운다고, 취업한다고 다가 아니다. 끊임없이 감각을 기르는 연습, 논리적인 디자인 설득력, 트렌드를 파악하고 유지하는 꾸준함 등이 필요하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나도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된다. 타성에 젖어 나도 내 실력을 기르는 걸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계속 해서 성장해야하는 디자이너의 길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 과정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