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로 어울리는 색깔을 정한다면 난 여름형이다.
쿨톤과 웜톤 중에는 쿨톤.
파스텔 톤에 흰색을 머금은 색깔이 잘 어울린다.
보통 이 색들은 여름옷이다.
또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난 여름을 좋아한다.
그런데 너무 덥다.
이건. 아무것도 못하겠다.
그럴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심지어 길을 건너면 마트가 있는데도 그 마트를 못 가겠다.
그래서 생필품을 마켓 컬리로 산 적이 있었다.
건너편 마트를 가는 것이 그렇게 멀리 느껴질 때가 있다. 또 절실하지 않기에 굳이 알람을 설정해두지도 않는다.
집에 오면 다시 또 깨닫는다.
아 건전지 사야 하는데.
올여름은 굉장히 빨리 더워진 것 같다.
에어컨보다는 선풍기를 선호하지만 이젠 제습기와 함께 틀어도 한계가 있다.
에어컨 리모컨은 한시적이기에 건전지를 미리 빼놨다. 그러다 단자에 흰 가루가 쌓이기도 하고 자꾸 돌아다녀서 다 버렸었다.
이제 리모컨을 킬 때가 와버리고 말았다.
한 계절만 틀 거라면 건전지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백만 스물 하나까지는 필요 없는 듯.
건전지 사는 것을 자꾸 깜박한다.
집에 와서야 기억이 난다.
스탠드형 에어컨은 버튼을 누르면 되긴 하는데 대신 다른 모드를 사용할 수 없다.
자동 건조 기능이 커져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방에 있는 에어컨은 버튼인 것처럼 보이는 걸 눌러봤지만 먹통이다.
나중에 엄마가 알려줬다. 뚜껑을 열면 전원 버튼이 있단다.
오. 정말 있다. 그렇게 틀어봤다.
그런데 이건 너무 불편하다.
뚜껑을 열고 다시 또 꺼야 하다니.
그러고 보면 리모컨은 정말 위대한 발명품인 듯싶다.
에어컨도. 어쩜 그렇게 춥게 공기를 바꿀 수 있는지.
에어컨을 틀어놨다가도 너무 추워서 다른 방으로 도망간다.
버티다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생산성이 너무 떨어져 있는 나.
집에 오면 더워서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넷플릭스로 드라마 끝내는 것으로만 헛된 성취욕을 불태우고 있다.
직장에서는 그래도 시원해서 무엇이라도 하는데 집에 오면 밥 먹고 넷플릭스 보는 것이 주 활동이 되어버린다.
아 움직여야지. 하루하루 무엇인가를 좀 해야지.
그렇게 결심했다. 건전지를 사자.
집을 좀 시원하게 만들어야겠다.
건전지를 사야지 하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밤 10시였다. 아 너무 늦었구나. 내일 사야겠다.
다음날 교회에서 돌아가는 길에 반드시 건전지를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어차피 걸어가는 길에 마트가 있으니 오늘은 사야겠다.
건전지 건전지 반복하며 걸었다. 까먹을까 봐.
그렇게 건전지를 드디어 샀다.
에어컨 리모컨에 건전지를 끼워줬다.
그러고 보면 애플 TV 리모컨은 충전형인데,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이렇게 난 아주 먼 마트를 다녀왔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며칠 전 비 오고 나서 날이 좀 시원해진 느낌이다. 선풍기만 틀어도 살짝 추운 것 같기도 하고.
무더위는 또 오겠지.
난 준비됐다. 리모컨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