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또는 이 경험이 쓸모가 있는 것일까.
특히 학창 시절에 이런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데.
어렸을 때는 그렇게 쓸데없고, 실수하면 타격이 큰 산수 암산을 왜 그리 했나 싶은데 성인이 돼서 암산 능력은 아주 유용한 능력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인가 숫자로 제안하거나 협상하려 할 때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굴러가지 않으면 상대에게 휘말리게 된다. 내가 지금 이득을 보는 건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수학 문제 하나 푸는 것도. 한 문제를 가지고 낑낑대거나 또는 한 시간 두 시간 고민하다가 마침내 해결 방법을 한번 알아내면 그건 아주 큰 성취감을 안겨주게 된다. 또 궁리를 하면 해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 다른 문제를 풀 때 자신감을 가지고 풀어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 앞에서 생각의 힘을 믿어볼 수도 있다. 시험 볼 때는 그만큼의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애플과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졸업 연설에서 그런 말을 했다.
인생은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리드 대학을 자퇴하기로 결심하고 들었던 캘리그래피 수업은 당시에는 무슨 쓸모가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나중에 이 수업은 매킨토시의 매력적인 글자들을 가져오게 된다. 당시에는 의미를 몰랐던 어떤 일들이 나중에 돌아봤을 때 지금 내가 있는 자리까지 점들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파리 유네스코 사무국으로 일하러 가기 전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임상시험 약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모든 임상시험들은 프로토콜에 따라 진행되고 관리된다. 모든 임상약들은 프로코콜에 있는 매뉴얼에 따라 조제되고 사후처리도 되어야 한다. 따라서 매뉴얼이 잘 갖추어져 있다. 매번 임상약을 조제할 때마다 매뉴얼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행하고 또 그것을 그대로 이행했는지 체크하고 서명했다. 이런 시스템들이 자동으로 나에게 익숙해졌다.
사무국에서 일하다 보면 영어나 불어뿐만 아니라 널리 통용되는 다른 외국어로도 문서가 출판된다. 하나의 보고서라도 영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로도 동시에 보고서가 작성되어 출판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해하는 언어가 아닌 경우의 문서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유용했단 게 바로 체크리스트였다. 내가 해야 할 일 또는 점검해야 할 일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놓고 그것을 확인하며 넘어가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예전에 했던 일이 쓸모가 있구나 하고 미소가 나왔던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조카들이 있다. 다음 달이면 셋째 조카가 태어날 예정인데 그 아이가 나오기 전에 이 두 아이들을 비행기 태워주고 싶다는 엄마(조카들의 할머니)의 마음과 오빠의 권유가 합치되어 엄마와 아이들이 김포 공항에 왔다. 이제부터 나의 서울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지인들에게 묻기도 하고 고민하다 결국 내가 가봤던 곳을 골랐다. 롯데 아쿠아리움과 서울 스카이, 그리고 롯데월드.
재작년 난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힐링 스폿. 생각을 하다 골랐다. 롯데 아쿠아리움 연회원권. 쉬고 싶거나 생각을 하고 싶을 때 아쿠아리움에 가자. 그렇게 연회원권을 끊었다. 막상 회원권을 끊긴 했으나 막상 혼자 가기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때 함께 가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함께 퇴근길에 롯데월드 몰에 도착해서 물품 보관함에 가방을 넣고 아쿠아리움에 갔다. 아쿠아리움에 결국 세 번 정도 갔는데 두 번을 그 친구가 동행해줬다. 친구와 함께 다니다 보니 아쿠아리움 구조를 좀 익히게 되었다. 물품 보관함에 가방을 넣어놓고 봐야 더 편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어디에 돌고래가 있는지도 알게 되고 아쿠아리움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 쓸모를 이번에 엄마와 조카들이 덕을 봤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넣고 가볍게 아쿠아리움을 돌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수월하게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또 물품 보관함 이용 시간은 저녁 10시까지라는 것도 미리 알고 그에 맞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아쿠아리움 다음에는 서울 스카이에 올랐다. 이것도 다른 지인과 함께 갔던 곳이었다. 한번 가봤기 때문에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결국 물어보긴 했지만). 또 올라가서 무엇을 보는지 어디가 사람들이 많이 사진을 찍는 곳인지 미리 알 수가 있었다. 미리 와봤던 것이 참 다행이었다.
다음날은 롯데월드에 갔다.
몇년 전에 가봐서 무슨 기구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는데 아뿔싸. 어린아이들은 무엇을 타야 하는지 몰랐다. 첫째는 신장이 120cm가 넘어서 몇 가지 탈 수가 있었지만 둘째가 110cm가 안돼서 탈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아이들이 모두 탈 수 있는 것은 정말 내가 봐도 너무나 재미가 없는 기구들뿐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어놨다니. 물론 언니 오빠들에게 재미있는 기구는 많지만. 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 그 순간. 지인에게 물어보니 과천 서울대공원에는 어린아이들이 탈 수 있는 것이 좀 있단다. 또 배웠다. 이렇게.
이렇게 둘째 날을 끝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이동했다. 어린이대공원도 최근에 가봤던 경험이 있어서 생각해낼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조카들이 좋아했다. 나무들이 많고 조용해서 참 좋았다. 참 재미있고 감사한 것은 조카들은 비둘기만 봐도 그렇게 좋아했다. 그렇게 비둘기랑 놀다가 동물원 쪽으로 향했더니 저기 얼룩말 뒷모습이 보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조카와 함께 갔는데 어머나 얼룩말은 정말 운이 좋아서 본 것이었고 동물원 개방 시간이 끝난 것 아닌가. 아뿔싸. 이번에 알게 되었다. 동물원은 10시부터 5시까지였다. 이것까지는 몰랐다. 아 이렇게 또 배우는 것인가. 아쉽긴 해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어서 좋았다. 동물원 끝난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어서 좋았다. 수줍음이 많은 우리 조카들에게는 사람들이 적고 한적한 곳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둘이 막 뛰어다녔다. 입구 근처에는 분수도 있어서 나름 만족스러운 외출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또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나중에 다른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 혜택을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는 것. 참 인생이란 재미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의 점들로 이루어진 선이고 또 나는 과거의 모든 순간들이 다 응축되고 쌓인 존재이다. 그리고 만남이란 그런 모든 순간들이 한순간 한 공간에서 만나고 부딪치는 빅뱅과 같은 찬란한 기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