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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를 가는 이유

Bar Cham (참바)

얇고 긴 테이블을 마치 넘어갈 수 없는 선처럼 가로지르도록 배치한 공간이 있다. 그 테이블은 바 테이블이라고 흔히 부르며, 그 너머에는 바텐더라 불리는 사람이 때로는 볼살이 떨리도록 힘차게 팔을 휘두르기도 하고 혹은 손님에게 어울리는 술을 추천하기 위해 상대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은 물론 억양과 표정으로부터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를 가는 이유는 방문하는 손님들의 그날 마음속에 부는 바람의 온도와 향기 그리고 세기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썸내음 가득한 바람이 달달 불기도 할테고, 누군가에게는 전남친 청첩장을 찢어 날려버릴 수 있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을 수도 있을테니 분위기 파악은 바텐더에게 아주 중요한 스킬 중 하나로 보인다.

뭐, 그런고로 모든 바텐더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바 테이블 너머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다. 어떤 바텐더는 이렇게 손님을 향한 적극적인 삿대질 관심을 보여줄 수도 있다. 주문이 밀려 바쁜 가운데 항상 그러기야 쉽지 않겠지만 내 주문을 받아주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집중해주는 바텐더를 만났다면 굉장히 만족스럽고 고마울 일이다.


"바" 라고 하는 장소가 그동안 가져왔던 음침하고 문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곳이거나 소위 이른바 각잡고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닌 보다 편안하고 친근한 곳으로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기에 혼자서나 여럿이서나 종종 방문하는 멋진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내 마음을 달래줄 술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 가줄 친구가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잠깐,


트렌디하면서도 클래식한 디자인,
반짝반짝하면서도 매트한 느낌,
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럼 내일 오전까지
보내주세요~
(현재시각: 퇴근 1시간전)



이 말이 귀에 익는다면 당신은 클라이언트의 조건을 충족시키려 노력해본 디자이너거나 기획자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지금 고객이 원하는 술을 찾아야하는 순간, 바 테이블 너머의 바텐더는 당신의 저런 개떡찰떡같은 요구조건을 듣고 내일 오전까지도 아닌 약 20초 이내에 답을 찾아내야하는 사람인 셈이다.


물론 20초보다 더 길어져도 정말 좋은 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하게 소통을 시도하고 즐기는 과정이 진정한 바의 매력이 아닐까 싶긴 한데, 모두가 그럴지는 모르겠다. 그날따라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

손님과의 짜릿한 신경전 끝에 답을 선정한 이후 혼신을 다해 술을 만들어주는 모습은 누가 봐도 멋진 일이다.

...가끔은..좀..

..... 과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한 대화를 거쳐 어느정도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진 술은 맛이 없기가 쉽지 않다. 왜냐면 그와 내가 함께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맛보는 술이라면 생소한만큼 추가적인 설명을 더 부탁할 수도 있고, 새로움이 주는 도전적인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마시고 싶은 술과 기분에 대한 표현을 비슷하게 해도 되돌아오는 술은 바텐더마다 다르다. 그들이 각자 기억하는 재료의 맛과 사용하는 기술과 손님과의 소통 능력이 다 다른 본인만의 고유한 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가 재밌고 바 호퍼 라는 개념까지 생겼다.


이외에도 바를 가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술이 있다거나, 콘셉트가 독특하다거나, 나의 어떤 특정한 목적에 부합한다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바는 바텐더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맛있는 술" 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느냐에 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 너머에 앉은 그 순간의 내 마음을 알아주려 노력하는 바텐더가 나에게는 최고의 바텐더고, 그가 있는 곳이 나에게는 최적의 바가 되는 셈이다.


그러한 멋진 바텐더가 되기까지의 해왔을 그의 노력과 희생에 대해 늘 감사하며 치어스.





바 호퍼: 바와 그래스호퍼의 합성어로 한 바에서 한두잔만 마시며 여러 바를 돌아다니는 사람을 말함


BAR CHAM: 서촌 통인동에 위치한 바. 임병진 바텐더. 2호점 예정.


Photo by lovesomei


본 연재물은 비마프(BMAF)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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