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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Nov 13. 2018

회사에서 내 편을 만난다는 것

그 흔치 않은 행운에 대해

 

 최근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나의 유닛장이자 사수인 E.


 그녀에 대해서 말하자면 하루 종일이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입에 발린 사회생활 같아 보이는 것들만 꾹꾹 눌러서.



 같은 유닛이 되기 전 나는 E를 '너무 예쁘니 주의할 것' 인물 군에 분류했었다. 바야흐로 질풍노도의 시기, 초등학교 3학년. 그때의 나는 내 인생관을 뒤흔든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얼굴 예쁘고 공부 잘하는 걸로 학교에서 꽤나 유명했던 한 여자아이. 큐빅이 가지런히 박힌 머리띠에 긴 생머리를 자주 빗는 그 아이와 멜빵바지에 야구 잠바를 걸치고 칠렐레 팔렐레 놀이터를 전전하던 내가 친해진 건 정말 엉겹결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아이가 엄마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되면서 우리는 절친 비스름한 것이 되어갔다.



 그러던 내 생일날. 그녀는 아무한테나 선물하는 게 아니라며 자신의 머리띠와 똑같은 모양의 색만 다른 머리띠를 선물했다. 음, 야구 잠바에 큐빅 머리띠라니. 이빨처럼 가지런한 큐빅들을 내려다보며 10살의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예쁜 애들은 저들 위주로 밖에 생각을 못 하는군. 그 이후로 '너무 예쁘니 주의할 것' 인물 군에 분류한 사람이 행동반경에 있으면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다. 그러니 회사 안팎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인인 E와 친해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 리가.



 회사에 다닌 지 꼬박 1년 후 그녀와 나의 팀이 합쳐졌다. 팀이 합쳐진 초반에는 그녀와 일할 기회가 없었다. 서로 옆자리에 앉게 된 서먹서먹한 선후배 관계. 그러다 지금 진행되는 우여곡절 많은 모 프로젝트에 구원투수로 그녀가 등판했고, 오고 가는 매일의 대화와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인정해야만 했다. 서른 해가 다 되어가도록 나는 여전히 편견에 똘똘 뭉친 사람임을.



 E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사수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본인은 그것을 단점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그녀는 따뜻하다. 주임 나부랭이에 불과한 나에게 일더미를 던지고 '일을 이따구로 밖에 못해?'라고 윽박질러도 암암리에 용인되는 관계임에도, 그녀는 한사코 그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언제나 내 편에서 생각하는 선배.


 내 편. 그게 E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어다.



 함께 일하는 것을 잘 못한다고 얘기하는 그녀지만, 나는 지금껏 E 만큼 일을 함께하고 있다고 느낀 사람이 없었다. 놀랍고 대단한 것들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 편에서 내 시선으로 일을 들여다 봐주는 그 한 번의 배려 때문에. 그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그녀가 참 좋다. 언젠가 E의 위치가 되었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그녀는 홀로 야근을 택했다.


 

 "E, 도와드릴 일 없을까요?"

 "아니 없어. 집에 가."

 "네? 아니, 일이 지금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응, 아니야."



 음, 써 놓고 보니 내가 미덥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늘 '아니'라는 말을 달고 사는 E의 옆에서 '그래도 같이해요!'라고 생떼를 쓰며, 미약하게나마 그녀의 편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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