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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Nov 13. 2018

B동 엘리베이터 앞에서

창문 위 얹어진 스물 아홉에게


 B동 엘리베이터에 난 큰 창은 계절에 따라 풍경이 시시로 변한다. 여름으로 접어든 뒤에는 높아진 하늘과 솜처럼 퍼뜨려진 구름이 퇴근하던 발걸음을 기어코 잡아챈다. 그런 날은 어디에 올릴 것도 아닌 사진을 의식처럼 찍어댄다. 물론 창문의 풍경 따위 알 바 없이 바쁜 날도, 새카맣게 변한 하늘과 '내일은 야근하지 말자' 다짐하는 날도 있다. 내 방 창처럼 이토록 익숙해진 공간은 아주 가끔씩 어느 해 10월의 나를 수면 위로 건져올리곤 한다.
 



 이 회사의 구성원이 아닌 아주 평범한 취준생이었던 그 해. 그날은 다른 회사의 면접날이었다. 날이 선선하고 맑아서 그랬는지 면접은 엉망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책상 앞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발걸음이 쉬이 떼어지지 않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I 회사 창문을 찍어서 오자. 면접을 망친 회사 근처에 그토록 가고 싶어 열망했던 그 회사 빌딩이 서있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뭔가에 홀렸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빌딩 앞에 다다랐고 10층을 눌렀다. 그때 탄 것이 B동 엘리베이터였다. 호기롭게 내렸지만 발을 내딛자마자 후회했다. 정신이 돌아온 거다.

 그 순간의 나는 이방인이었다. 누군가 발견하면 아주 이상해 보일 그저 낯선 이에 불과했다. 회사의 안과 밖을 가르는 출입문은 세상 그 어떤 유리보다 두텁고 단단해 보였다. 괜스레 유리문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혹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까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뭐 하자고 여기를 올라온 거지. 괜히 속이 쓰렸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주 큰 창이 있었다. 복잡한 서울 시내가 마치 그림처럼 조용히 들어 앉은 창이.


 언젠가는 나도 이 창밖의 풍경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올까, 저 유리문 너머에서 일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옆자리에서 '오늘 날씨는 참 별로'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 창가에 서서 하는 그런 날이 올까.
 
 그 순간이 B동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최초의 의식이었다. 이 회사이든 혹 다른 곳이든, 언젠가는 내 몫의 일을 하며 내 몫의 꿈을 다듬어가는 공간이 생겨나길 기도하며 찍은 사진. 오후의 하늘은 참 예뻤고 복잡한 서울 도심이 그 순간만큼은 작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퇴근을 하며 B동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다시 가을이 되었고 그때 도둑 사진을 찍고 도망간 스물일곱의 나는 스물아홉이 되었다. 두꺼운 유리문은 얇아졌고, 이제는 이방인이 아닌 스물아홉. 창문 너머 담긴 서울 시내를 그림처럼 구경하며 어떤 꿈을 꾸고 있던 스물일곱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나는 그런 나이를 지내고 있는걸까. 창문 위로 어스름히 스물아홉의 내가 비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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