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헤어질 수도 있었던 연인에게 이별을 강요할수록 그들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여겨, 관계에 강력한 서사를 부여하고 더 끈끈한 사랑을 틔운다는 심리 현상. 학부 시절 교수님은 애정을 식게 만드는 건 역경이 아닌 시간이라며 혹시 주변에 뜯어말려야 할 커플이 있다면 내버려 두라고 덧붙이셨다. 왜 장애물을 만나면 사랑이 더 뜨거워지는 걸까 변태도 아니고. 그런데 고난 속에 피어나는 그 변태적 사랑, 요즘 나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적 생활 중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동에의 자유의 박탈일 것이다. 카페 하나를 이용해도 움츠러들게 되는 요즘 같은 때에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몇 개월 전 인천 국제공항에 들러 역을 이용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공항 근처는 물론, 내부에도 사람은 손에 꼽혔다. 수많은 인파로 활기가 띄어야 할 공간이 죽어있었다. 기억 속 공항은 언제나 화려하고 눈부셨다. 이렇게 공항이 회색빛이었나. 대리석과 철로 이루어진 공간을 빛나게 하던 것은 기대에 찬 표정과 형형색색의 옷과 짐들이었던 것이다. 캐리어 끌고 싶다. 고요한 공항 바닥을 밟으니 대리석과의 마찰음을 내는 캐리어 바퀴들이 그리워졌다. 여행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 언제쯤 그걸 다시 들을 수 있을지, 조금은 아득하기도 하다.
나는 요즘 들어 여행 에세이나 여행 브이로그를 자주 본다. 다녀와 보지 않은 나라를 누비는 남의 이야기엔 어쩐지 공감이 되지 않아 손길도 눈길도 잘 안 줬었는데, 틈만 나면 달고 산다. 온 인류가 여행을 분실한 이 비극을 간접 체험으로라도 달래려는 심리인가. 그렇다고 여행 가고 싶어 안달 난 마음이 진정되지는 않는다. 마음대로 갔다 올 수 있을 때 더 자주 갔어야 했나? 여행을 막는 것이 쥐어 짜내야 만들어지는 시간과 돈인 줄 알았더니 역병이라는 상상도 못한 존재가 생길 줄이야. 아, 바다 건너 그곳들이여. 도시와 산과 바다여. 왜 우리는 만나고 싶어도 서로 만나지 못하나요. 교수님 말이 맞았다. 자유의 시간 속에선 미지근했던 애정이, 구속의 상황에선 캠프파이어 불처럼 타오른다. 나는 매일을 그렇게 여행을 앓으며 산다.
그리움을 달래려는 심산으로 옛날 여행 사진을 몰아봤다. 남의 여행 감상으로는 모자랐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건 역시 여행 중인 과거의 나. 초반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간판이나 땅에 굴러다니는 낙엽까지 찍어서 장수를 헤아리기 힘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줄어드는 건 어떤 여행에서도 똑같았다. 사진 속 나는 긴장이 다 풀리지 않은 어정쩡한 표정이기도, 또 충만한 행복감을 주체하지 못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여행의 순간이 기록된 사진들은 희미해져가는 기억들을 소환했다. 실은 기억보단 감정에 가까운 감상. 포틀랜드에서 먹은 음식의 맛도, 메뉴의 이름도,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지만,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산책하며 실없는 소리에도 깔깔 웃었던 그날의 행복만은 선명하게 일렁인다.
아 부러워 죽겠네 과거의 나. 과거의 나에게 말이 닿을 수 있다면, 부디 내일은 없는 것처럼(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므로) 행복하다 돌아오기를 당부하고 싶어 졌다.
사진으로 지구 한 바퀴 여행을 하고 잠든 그날 밤. 처음으로 혼자 떠난, 그래서 더 애틋한 도시로 남아있는 뉴욕이 꿈에 나왔다. 그때의 가난뱅이 여행자는 단 한 번도 택시를 타지 못했지만 꿈 속의 여행자는 노란색 택시를 타고 맨해튼을 누볐다. 빽빽한 차들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택시는 도로 위를 자유롭게 내달렸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며 이 꿈이 조금 더 길게 지속되길 바랐다. 그 밤의 꿈속에서 만큼은 나는 자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