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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Aug 08. 2019

당신은 도시의 택시운전사

내가 사랑에 빠지게 만들죠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현지의 버스와 지하철은 여행의 낭만이다. 그런데 우버는, 정말, 진짜, 너무 좋다. 이렇게 유치한 부사를 사용하면서까지 얘기하는 건 우버를 향한 내 애정에 한 톨의 거짓도 없기 때문이다.



 이 무한한 애정의 시작은 작년 포틀랜드에서부터였다. 함께 여행한 은아와 나는, 돈이 없다고 징징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우버 어플을 켰다. 나중에 정산해보니 질 좋은 식사를 두어 번은 더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버를 탄 셈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 금액은 변하지 않을 거야.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고 무엇보다 요금으로 실랑이할 일이 없다는 것도 매력이지만, 엄밀히 말해 내가 우버를 좋아하게 된 건 다 드라이버들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포틀랜드로 넘어온 날. 공지된 연착 시간과 다르게 원래 시간대로 출발해버린 포틀랜드행 기차를 놓친 뒤였다. 짐은 이미 기차에 실려 포틀랜드로 이동하고 있는데 정작 주인 둘은 시애틀 역에 2시간을 더 묶여 있어야 했다. 이런 무슨 개 같은 경우가. 누구 한 명 건드려 봐 아주. 가만 안 둬. 포틀랜드에 도착했을 때 내 얼굴은 누가 봐도 험악했고 다섯 시간 반 만에 만난 캐리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서야 겨우 표정이 풀렸다. 눈물도 찔끔 났던 것도 같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상봉식을 마친 뒤 간절한 건 그저 숙소였다.



 우버 드라이버와 매칭 뒤 5분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우리 앞에 익숙한 모양새의 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국산 자동차 브랜드의 대형 SUV. 헤이, 유어 카 이즈 메이드 인 코리아, 앤드 위아 코리안, 유노, 같은 되지도 않는 주접을 떨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지쳐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가 말이 너무 많았다. 온몸에 문신 투성이인 그의 외모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새도 없었다.



"어디서 왔니? 포틀랜드는 처음이니? 우리 도시 진짜 좋은데! 혹시 어디 가볼 생각이야? 너 여기 지도 볼 줄은 알아? 너네 정말 잘 온 거야. 포틀랜드는 진짜 미국에서 최고로 좋은 곳이거든!"



 그저 포틀랜드였다. 포틀랜드. 태어나고 자라 일까지 하게 되어, 매일을 지겹도록 보는 도시일 텐데 저렇게나 좋아한다는 게 말이 돼? 우버에서 따로 드라이버 교육을 시키는 게 분명했다. 그 이후로 만난 모든 우버 기사들이 포틀랜드를 자랑하지 못하면 큰일 날 사람들처럼 굴었으니까. 종종 포틀랜드를 떠올릴 때면 어느 장면 틈바구니에서든 우버가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우버를 직업으로 삼고 있던, 아무래도 포틀랜드 홍보 대사임에 분명한 그 포틀랜더들이.



 그래서 생애 첫 유럽 여행에서의 우버는 어땠냐고? 역시나였다. 우버에서 지역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고서야, 이런 친절은, 그런 사랑스러운 대화는, 말이 되지 않았다. 낯선 여행객이 자신의 도시를 좋아하게 됐는지가 궁금해, 다정한 미소로 건네는 질문은 여전했다.



리스본 어때? 포르투는 좋았어?

네가 즐거웠었다니 나도 좋다.






Lisbo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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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 편은 파리에서 꽤 긴 시간 레이오버를 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말해 뭐해. 역시나 우버를 탔다. 사실은 좀 긴장했다. 조금 무뚝뚝한가 싶은 순간 서툰 영어로 수줍은 인사를 건네 오던 친절한 포르투기들에 반해 파리지앵들은 까칠할 것만 같다는 편견.



 짐을 싣고 자리에 앉자마자 드라이버는 "봉봉?"이라고 물었다. 봉봉? 내가 봉봉이라고 들은 게 맞나? 멍청한 표정을 짓는 얼굴 앞으로 불쑥 넘어온 건 빨갛고 노랗고 파란 엠앤엠즈 초콜릿. 아, 그 봉봉이 이 봉봉이구나. 파리에서 처음 입에 넣는 음식이었다. 땅콩 맛 엠앤엠즈. 크게 웃어버릴 것 같은 기분에 감사하다며 받아 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봉봉이 있는지 자랑이라도 하듯 커다란 엠앰엠즈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낯선 곳에서 주는 거 덥썩덥썩 받아먹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차마 손에 쥐고만 있을 수 없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이모저모 돌려가며 우리의 반응을 살피는 드라이버의 분주한 손 때문이었을까. 땅콩 맛이 나는 엠앤엠즈를 씹으며, 실은 무엇하나 내 취향이 아닌 노래를 들으며 시트에 몸을 뉘었다.



 그때 정말 마법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보송하게 내려앉은 구름들 뒤로 빨가면서도 노란, 그러면서도 주황빛을 내는 분홍색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지금껏 봐왔던 수많은 노을을 모두 잊게 만드는, 황홀하여 말로 표현하기조차 버거운 파리의 저녁 9시. 차창에 붙어 탄성을 지르는 우리에게, 우버의 기사는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너는 이 도시와 꼭 사랑에 빠질 거야". 하루도 채 있지 못하는 방문객인 주제에, 나는 꼭 그러겠다고 답했다.




 무엇이 한 사람을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걸까. 왜 그 도시로 여행을 갔냐는 질문엔 한참을 고민해야만 하는 사람임에도, 왜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엔 너무도 쉽게 꺼내고 말 것이다. 그곳의 택시운전사들이 말이야, 로 시작하는 긴 이야기를.






pari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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