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영업을 시작해본다
꽤나 진지한 질문이었다. 내 인생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묻지도, 듣지도 않았던 질문.
"여행이 왜 좋아?"
스물세 살 혹은 네 살이었던 것 같다. 한참 여행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터라 주변에서 '야, 쟤 입 좀 다물고 제발 어디든 가라고 해라.' 말했던 시기. 눈만 마주치면 떠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신기했던지 친구는 정말 뜬금없이, 집으로 가던 나에게 대체 뭐가 그렇게 좋길래 여행을 가고 싶어 하냐고 물었다.
여행이 뭐가 좋냐면 말이지, 재충전도 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고, 새로운 것도 볼 수 있고, 생각도 많이 할 수 있고, 또... 여행의 좋은 점을 손까지 꼽아가며 침 튀기게 말했지만 상대는 심드렁했다. 근데, 솔직히 그거 평소에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지금 당장도 할 수 있는데 너는 왜 자꾸 멀리 떠나려고 해?
그러니까 그가 정말 궁금했던 건 그거였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일상을 버리고 싶어 하는지. 그때의 나는 여러모로 지쳐있었다. 학교 공부에 치이고 두 세개씩 뛰는 알바에 치이고 진로탐색을 변명 삼아 재수생 주제에 1년 휴학을 한 후 돌아온 현실에 치이고. 그래서였는지 다만 여기가 아니라면,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면 뭐든 좋았다. 그런 주제에 여행이 좋아서 간다느니 어쨌다느니 말하는 것이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었다.
나는 왜 여행을 가는 걸까.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거라면, 그 선택은 정말 옳은 걸까.
해프닝에 불과한 그때의 대화는 내 여행관을 흔들어놨다. 그 이후로 여행을 안 가기로 결심한 거냐면, 땡. 전혀 아니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거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생각을 한 스스로가 기특했던 것도 같다. 이왕 떠나는 것이라면 명확한 목적, 있어 보이게 '컨셉'을 가지고 떠나자고 방향을 튼 것이다. 누구라도 '왜 그 여행지로 가냐' 물어보면 바로 대답할 수 있게끔, 철저한 조사와 준비 끝에 떠나는 여행자가 되기로 했다.
이전 여행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1번 여행지 : 현지 광고와 마케팅을 더 알고 싶어서
2번 여행지 : 로컬 커피 문화를 맛보고 싶어서
3번 여행지 : 도시 브랜딩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럴듯한 목표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모든 목표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만일 목표 달성치로 점수를 매긴다면 여행들은 모두 실패였다. 여행을 왜 가는지 모든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생겼지만 방어벽에 불과했다. 적어도 나에게 여행은 그렇게 심오한 존재가 될 수 없었다. 결국은 다시 되돌이표. 나는 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에너지도 시간도 돈도 이렇게 많이 드는데, 여행 그거 정말 좋은 걸까.
포르투갈에 꼬박 13일을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야 알았다. 내가 여행 그거, 대체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의 삶은 취향과의 싸움이다. 나의 취향에 반하는 것들과 부지런히 싸워가며 타협해야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 회사 동료와 점심 메뉴를 놓고 조정하는 것도,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주머니의 사정을 살피는 것도, 당장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재우고 출근 카드를 찍는 것까지. 일상은 내 취향을 어떻게 하면 실현 가능한 적정선에서 타협하며 억누르는지에 대한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행은 결국 일상과의 휴전이다. 지겨운 싸움을 잠시 내버려두고 내 취향을 촘촘하게 끌어올리는 것. 숙소를 고르고 일정을 세우고 방문할 장소를 선택하는 것들은 평소와는 달리 나의 입맛이 필요하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가 가장 행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에서만큼은 내 취향이 기준이다. 이 선택들이 적어도 그 도시에서만큼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고르는 것에 혼심의 힘을 쏟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날수록 여행은 짙어진다.
길고 긴 여행의 끝에서 다시 발견했다. 산보단 바다를, 대중교통 보단 걷는 것을 (그리고 택시를 조금 더), 창이 크고 햇빛이 잘 드는 집을, 낡은 손 때가 묻은 빈티지를, 꽃향 보단 나무와 흙향을, 삼시세끼 다 챙겨 먹는 것보단 한 끼 정도는 디저트로 배를 채우는 것을, 노트에 휘갈기 듯 쓰는 문장을, 김민철을 또 알랭 드 보통을 사랑하는 나를. 이토록 선명하게 건져 올렸다.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다. 돌아온 이후의 삶이 너무도 허망하여서, 다시 떠날 궁리만 하는 이 반복이 옳은 거냐고. 아니다. 그건 분명 잘못되었다.
하지만 여행은 반드시, 자주 떠나야 한다. 일상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나를 건져 올리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선명해진 나로 살아가기 위해. 타협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 틈에서 희미해져 가는 나를 뚜렷하게 다듬기 위해. 우리는 떠나야 한다.
그러니 한 번쯤은 아주 길게, 목적 없이 떠나자. 목적 없이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당혹스러움에서 시작하는 거다.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면 궁금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어떤 맛을, 메뉴를, 분위기를, 시간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희미한 후보들 사이에서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해가는 형태가 보인다면, 그게 바로 누구도 대변해줄 수 없는 나의 취향일 것이다.
우리, 더 자주 여행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