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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Jul 01. 2019

그라사 전망대의 엉성한 버스커

준비되지 않았다고 믿는 마음에게



 리스본의 전망이 여행객의 마음을 홀리기에 충분하다는 건, 이 도시의 언덕이 여행객에게 매우 불친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행자를 반시간 정도 골탕 먹이고서야 자신을 내어주는 좁고 가파른 도시. 가쁜 숨을 고르며 목적지에 오르는 순간, 여행자는 생각한다. 바다를 향해 헤엄치는 테주강과 태양빛을 끌어 앉힌 주황색 지붕들의 파도. 이보다 더 완벽한 보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풍경 속에서 노래 하나가 간절해지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름다운 것에 아름다움을 더하고자 하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 어떤 음악가들은 이 본능을 따라 거리로 나왔다. 그러곤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 자리를 잡은 채 노래가 간절한 이들에게 가진 것들을 내놓는다. 여행 내내 수많은 버스커들을 만났고 수진과 나는 자주 지갑을 열어 그들의 선물에 보답했다. 아니, 왜 공연장이 아니라 여기, 이 길 위에 있는 거야? 고맙게도. 다만 그라사 전망대의 기타리스트. 그 남자는 예외였다.








 몇 시쯤 전망대에 도착하면 되냐는 수진의 질문에 퇴근하면서 본 주황색 하늘로 시간을 가늠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라사 전망대는 눈이 부시게 환했다. 여긴 해가 긴 유럽, 포르투갈. 나는 대한민국의 노동자. 수진의 얼굴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일몰까지 한 시간 하고도 반이 더 필요했다. 간간히 바람소리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이 시간을 보내려면 음악이 필요했다. 주황색 지붕이 넘실거리는 이 경치에 음악이 없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때 멀찍이서 기타를 매만지던 남자 하나가 보였고 나와 수진은 그가 버스커라는 걸 직감했다. 그간 만난 리스본의 버스커들이 그랬듯, 그 역시 아름다운 것들을 들려줄 것이 분명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연주는, 어딘가 부족했고 엉성했고 허술했다. 처음엔 손 풀이 용으로 가볍게 코드를 잡는다고 생각했다. 다음 곡도 그다음 곡도. 그의 단순한 코드 진행은 변하지 않았다. 저거 무슨 곡이야? 나도 몰라. 심지어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 덕에 그가 연주했던 곡들도 불분명했다.



"저 실력으로 어떻게 나온 거지?"



 감상평은 딱 그랬다. 간혹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도 있었고, 기타 케이스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이십여분이 흐른 듯했다. 연주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흘긋거리고 있었다. 노을이 더디 몰려와 눈을 둘 데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마는. 외로워 보일 정도로 홀로인 남자는 갑작스럽게 마음 한 켠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돈을 좇아 거리로 나왔을지 모른다.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속사정은 영원히 알 수 없을 여행객이니까. 이 무모한 남자를 오해하고 싶어 졌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를 믿고 거리에 선 사람 이리라, 그렇게.



 연주를 준비하며 담배 한 개비를 꼬박 다 태우고서도 선뜻 일어나지 않던 그를 기억한다.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기타를 매만지던 서툰 손도. 첫 코드를 잡고 내리는 순간, 전망대의 사람들에게 그가 멋진 기타리스트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겐 다른 의미였으리라.



 연주를 마친 남자는 전망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다시 전망대는 바람과 새와 웃음소리만이 전부였다. 시간이 더 흘러갔다. 리스본에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지평선으로 사라져 가는 태양은 한없이 찬란했다. 태양 가까이에 앉은 도시, 리스본. 태양을 사랑하다 못해 태양이 되기로 작정한 이 작은 도시는, 지붕과 벽면의 색이 완연히 대비되던 낮과는 달리 모든 것을 주황색으로 물들여 갔다.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붓에 주황색 물감을 이겨 문질러 둔 것 마냥. 도시는 커다란 하나의 존재였다.



 이런 풍경에 노래 하나가 간절했지만, 그곳에 더 이상 노래는 없었다. 다만 어떤 엉성한 기타리스트가 남기고 간 존 레논의 'imagine'을, 속으로 흥얼거려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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