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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 Oct 08. 2020

집 꾸미기 말고 집 꾸리기



 올 장마가 유독 지독하긴 했다. 확실히 작년과는 다른 외부 환경 때문이었는지 집에 곰팡이가 자주 피었다. 얼마나 자주였냐면, 화장실 줄눈과 실리콘에 오르는 곰팡이를 없애려 매주 락스 청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벽에는 점박이 같은 곰팡이들이 피부병처럼 번져 나갔다. 작년 여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제습기의 만수 알림 신호가 생각보다 빠르게 켜지고, 물 먹는 하마에 물이 생각보다 빠르게 차오르는, 그런 수준과는 달랐다. 방 곳곳에 제습제를 던져두었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제습기를 켜 두었는데도 꿉꿉함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결국 과로로 사망한 제습기를 애도하며 애초에 더 크고 비싼 걸 샀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감정이 쓸려나가자 그 사이를 짜증이 메웠다. 대체 이 집은 왜 이렇게 습한 걸까.


 처음 이 집을 방문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음습한 공기는 입주 첫날이 되어서야 뒤통수를 치며 다가왔다. 싱크대에서 나는 모호한 냄새에 대해 집주인에게 항의하자 자신의 집도 그렇다고 했다. 고작 1년 4개월을 살았을 뿐인데도 집주인의 대화 방식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그의 문장 구성은 늘 같았다. '원래'라는 단어를 필두로 '다른 호수에서는 별 말이 없는데'라는 문장을 방패 삼았다. 곰팡이가 올라온 벽지에 대해 '아무리 장마라지만 좀 심한 것 같다'는 분노 섞인 항의에 '이런 건 다 세입자 과실'이라며 무기를 휘둘렀다. 그 모든 방어와 공격에 참패하고 말았다. 종국에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3층 아가씨'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는데, 이왕 찍힌 거 제대로 드러누워서 진상 짓을 했어야 했나 후회가 막심할 뿐.



 더러워진 벽지를 보며 정말 예민한 건 내가 아니라 바로 이 집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집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6평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 부담스러웠다.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공간에 대한 불편한 감정. 이전까지는 내 공간이라고 불릴 곳이 없었다. '내 방'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지만 부모님 집에 딸린 2평 남짓한 공간은 부끄럽게도 엄마가 가꾸는 곳이었을 뿐이다. 학교나 회사에서 주어지는 공간은 사적인 동시에 떠나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공공의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도 '내 공간'이었다 하기엔 어렵다. 정말 나의 공간이 생긴 지금에서야 집은 꾸미는 것이 아닌 꾸려나가는 노동의 현장임을 깨닫는다.






 독립 전에는 집을 채워나갈 가구나 소품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취향을 반영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반적인 인테리어 톤을 생각하며 물건을 사들였다. 그러나 몰랐던 것이 있었다. 진짜 주거 생활은 집을 꾸미고  직후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섬세하게 돌봐야 하는 반려 동물이나 식물처럼, 공간도 돌봐야 하는 존재이다. 그냥 둔다고 알아서 청결해지거나 깨끗해질  없다. 공간은 점진적으로 망가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사는 대로 살면 공간은 빠르게 병들어 간다. 거기서 그치면 좋겠지만 공간이 병들면 사는 사람도 같이 병들어 간다. 신체적으로 탈이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탈이  수도 있다. 그러니 1 가구의 가장이라는  스스로와 나를 망가뜨리길 원하는 공간을 짊어지고 반대로,  반대로 역행하는 . 그리하여 건강한 인간이고자 끊임없이 분투하는 .

 

 나는 정말이지 독립된 인간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구나. 재미있고 행복해보이기만 했던 독립 생활의 현실을 한 번 더 실감한다.


 이따금씩 '그러게 왜 뜨신 엄마 밥 버리고 기어 나와가지곤'하는 자책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직하게는 다시 본가로 돌아갈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독립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첫 마음을 되새겨본다. 단지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서 살겠다는 정도의 마음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살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


  더러워진 벽지 곳곳에 투쟁의 흔적을 들여다봤다. 곰팡이를 락스로 닦아내고, 벌레를 때려잡느라 생긴 얼룩덜룩한 생체기들.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의 공간으로 언제쯤 이사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사는 동안 애물단지 같은 6평이라 할지라도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꾸려나가야만 할 것이다. 예민한 3층 아가씨는 그래서 오늘도 덜거덕 거리는 제습기를 틀고 바닥을 닦으며 돌아오는 주말에 해야 할 청소 목록들을 메모장에 적어 내려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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