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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쟁이 Jul 31. 2021

처음 느껴 본 문화 충격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된 것


  오랜 비행에 지쳐있던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비행기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느릿느릿 좁은 복도를 지나던 중이었다. 앞 줄 좌석에 서 있던 승객을 보고 먼저 가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서로 양보하기 위한 찰나의 실랑이 끝에 결국 내가 먼저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그저 친절한 사람이네 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다. 여전히 꿈속을 걷는 듯, 캐리어 바퀴 소리만 드르륵 울려 퍼지는 새벽의 조용한 공항 로비를 멍하게 걷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더니 "캐나다에서는 레이디가 퍼스트야"라고 씩 웃으며 말하곤 나를 지나쳐 달려갔다. 조금 전 나에게 양보를 했던 그 사람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받아칠 틈도 안 준 채 사라진 그에게 뒤늦게나마 참 고마웠다.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릴 수 없고, 그때 고마웠다는 말도 전할 수 없지만, 나에게 참 좋은 캐나다의 첫인상을 남겨준 사람이었다.


 양보에 관하여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내 생의 첫 해외 여행지는 이탈리아였다. 동행과 잠시 떨어져 혼자 정처 없이 유럽의 길목을 떠돌던 중이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걷다가 길을 건너볼까 하며 서 있던 참이었을 것이다. 마침 전차가 내 방향으로 오는 듯싶어서 그것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전차가 멈췄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건널목에서 교통수단의 양보를 받아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전차였다.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사 아저씨를 쳐다봤더니, 씩 웃으며 나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방금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순간 멍 했을 정도로 크게 당황했었다.


 물론 한국에도 양보를 해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며, 유럽일지라도 양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곳이 더 낫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러한 일들을 통해 하나 느꼈던 점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에 한국에 대한, 한국인에 대한, 혹은 아시아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겼던 적이 있었을까.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기억 속에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잊혔을 수도 혹은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막연하게 특정 장소나 특정 기억에 대해서 떠올릴 때, 나라는 존재가 좋은 추억의 일부로 남아있기를. 한 사람의 행동이 그 나라 혹은 문화의 전반적인 인식을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에 난 오늘도, 앞으로도 좋은 영향력을 내뿜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In Venic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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