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업무로 한창 바쁜 오후, 전화 진동과 함께 와이프의 이름이 핸드폰에 찍혔다. 일반적으로 안부 전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며 상당히 불안한 전화이다. 전화를 받았을 때 역시나 와이프는 잔뜻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내용인 즉슨 우리 큰아들이 지난번 수학 단원평가 시험지를 들고 왔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였다. 지난 2주 간 매일 저녁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남자 아이를 인내심을 가지고 1시간 씩 꼬박꼬박 수학 공부를 시켰던 나 역시 허탈함과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이였다. 30분 가까이 와이프의 푸념과 짜증, 아들의 질책, 걱정 온갖 감정을 듣고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아이가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를 집에 가서 봐야 겠지만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틀린 문제를 복기하면서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 일까라는 고민과 걱정, 답답함이 한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내 마감 업무도 덩달아 다시 밀려 들어와 나를 더 한 숨 쉬게 만들었다.
지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집의 분위기는 내가예상했던대로 축 가라앉아 있었다. 아들에 대한 불만으로 심기가 좋지 않은 아내와 그런 눈치를 보고 있는 큰아들, 그런 분위기도 모르고 천박지죽으로 놀고 있는 작은 아들 다시 한번 한숨이 나오면서 오늘 저녁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한편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런 고민의 원흉인 아들의 시험지가 식탁 위에 놓여저 있었다. 1번 부터 천천히 맞은 문제와 틀린 문제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한번에 밀려왔다. 아쉬운 것은 틀린 문제의 반은 실수였고 안타까움의 반은 모르는 문제였다.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문제도 어려웠거니와 문장 이해력이 떨어져 연산 중심으로 공부를 시켰으나 시험 문제는 문제를 이해해야 풀수 있는 문제 중심으로 나왔다. 어찌 보면 공부라는 바다를 해쳐나가는 배를 항해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운항을 한 꼴이였다. 하지만 그런한 이유와 관계 없이 공부를 원체 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불만이 가득한 아내는 나에게 계속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해야 아들이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공부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정말 인생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고 어떻게 보면 답이 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과연 몇 프로나 있을까? 10%, 5%, 어쩌면 그 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나는 아내가 아들의 공부에 대해 걱정하는 질문을 할때 마다 언제나 동일한 답변을 했다.
"각성을 해야지, 각성을 하지 않으면 힘들어"
각성, '눈을 떠서 정신을 차림'이라는 뜻이지만 내가 뜻하고 사용하는 각성은 게임에서 캐릭터를 레벨업 하다가 어느 순간 모습의 형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면서 능력치가 몇배로 올라가는 상태를 말한다.인생을 살면서 사람도 그렇게 갑자기 행동과 생각이 바뀌고 능력치가 갑자기 올라가는 경우가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시점을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2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재 2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그리고는 나는 그 시점을 각성했다고 애기 한다.
내 인상의 첫 번째 각성은 언제일까? 라고 생각해보면 사실 나의 첫 각성은 상당히 작고 소소했고 그러기에 인생의 큰 방향 전환은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추억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인가, 처음 사과를 소재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던 나는 학교 생활을 하며 꾸준히 동시, 수필, 극본 등 다양한 글짖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 치고는 많은 작품 생활을 했던 것 같고 그 당시 썻던 글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는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던 중2 때 갑자기 나는 글을 쓰기를 멈추었다. 도저히 글이 더 이상 써지지가 않았다. 표현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문장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는 깜깜한 어둠에 휩싸이게 되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어느날 갑자기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이 머리가 번쩍였다.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이 그 동안 독서와 담을 쌓고 살았던 것이다. 글이라는 것이 나의 재능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과 문장, 표현을 받아드리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나만의 새로운 글을 만들어야 끊임 없이 확장을 할 수 있는 것이 기본인데 나는 그 기본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2년 동안 15년간 읽지 않았던 책을 몰아 읽을 기세로 세계 명작, 한국 근대 소설 등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에 대한 나 나름의 각성이라는 것을 했고 15년간 부모님과 선생님이 그렇게 읽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던 독서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