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요란스럽고 징글징글했던 여름이 끝나고 찾아온 가을의 시작점, 우리 가족은 설레는 외출을 나섰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네 가족 모두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 차를 인수받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이다. 자동차 대리점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우리의 새로운 가족인 하얀색의 자동차가 눈에 들어왔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저 차다! 저 차다!" 하며 한 껏 들떠 있었다. 기존에 타고 다녔던 15년 된 경차를 주차하고 시동을 끄고 나니 중고차 딜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온 중고차 딜러 연락에 우리 가족은, 특히 우리 큰 아들의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큰 아들이 기존의 차와 헤어지기 전에 꼭 사진을 찍고 싶다고 몇 달 전부터 애기 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민망했지만 우리 가족은 중고차 딜러분을 뒤에 세워두고 떠나보내는 기존차 앞에서 처음 맞이하는 날인 마냥 열정적인 기념 촬영을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10여분 요란스러운 기념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새로운 차 앞으로 달려갔다.
영업 사원으로부터 차키를 건네받고 정신없이 차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동안 와이프는 차 외관의 이상 여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작은 아들은 넓어진 뒤 좌석에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얼추 영업사원의 설명이 끝날 때쯤 큰아들이 뒤에서 나에게 조용히 한 마디 했다. "아빠 우리 차 간다~~" 아들의 말에 앞을 보니 집에서 타고 왔던 기존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을 쳐다보니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여린 우리 큰 아들에게는 새로운 차에 대한 들뜬 마음보다는 본인과 10년을 함께해 온 기존차를 떠내 보는 일이 더 마음 아프고 슬펐던 모양이다. 사실 나 역시 생애 처음으로 신차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그날부터 끊임없이 떠나보낼 차에게 말을 건넸던 것 같다.
"10년 동안 수고했다.", "한 달만 더 고생해 다오.", "이제 너도 좀 쉬도록 해라."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맛있는 것이라도 한번 더 사주고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잠이라도 더 재워 주어고 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존재이다 보니 그저 마지막 청소를 하는 그 순간까지 지난 시간 고마움에 대한 표시를 말로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나는 못내 아쉬웠다.
의외로 나의 유년 시절 이사를 가고 새로운 차를 바꾸는 일들이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차가 집에 오는 일은 항상 설레는 이벤트였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왔을 때는 한 달 가까이 동네를 알아야 된다며 여기저기 여행 하듯이 들뜬 마음으로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이사 온 동네에서 산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30년 동안 한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지만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이 생기면서 지난 10년간 3번의 이사를 했다. 40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나의 인생 이사 횟수 절반이 지난 10년간 이루어진 셈이다. 그렇게 한 회, 두 회 이사를 할 때면 나는 항상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이사를 하기 위해 준비가 잘 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가는 곳이 정말 앞으로 우리 식구를 위해 최적인 것일까?, 다른 선택지를 놓친 것은 아닐까?'와 같은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 불안감에 유년 시절 이사에 대한 설렘은 이제 더 이상 느끼기 힘든 감정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