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지독하게 신고 다니던 쪼리가 있다. 두툼한 밑창이 나름 키가 커보여서 적응하고 나니 매년 여름 이것만 신었다 할 정도로 (심지어 출퇴근 할 때도!) 오랫동안 신었는데, 발리 여행할 때 경사가 가파른 클링킹 절벽을 오르다 몇 번을 떨어트려 버린 적도 속초 바닷가에 아무 생각없이 신고 들어갔다 파도에 휩쓸려버릴뻔 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찾아내던 쪼리. 아직도 발에 꼭 맞아 호주까지 들고와서 신고있지만 전 남자친구 선물이고 너무나 해져버려 언젠가는 이 쪼리와도 이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놓고 몇 번 안신었던 하얀 쪼리를 가져왔는데 생각해보니 젠장 이것도 내가 커플 신발로 산 거였어. 그래도 계속 어쩔 수 없어 또 몇 번 신다보니 새끼 발가락이 빠질듯이 아파와 다른 걸 사봐야지라고 오클랜드 주말 마켓에서 조금 진한 라떼색의 큐빅이 박힌 걸 샀는데 구름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라던 점원의 말과는 다르게 가느다란 끈이 발 등에 엄청나게 큰 물집을 만들어낸다. 이걸 어떻게 한담. 호주의 강한 햇빛에 새까맣게 탄 피부톤과도 예쁘게 어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큐빅도 마음에 들지만 아직은 내 신발이 아닌 기분.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예쁘니까 나랑 잘 어울릴꺼 같으니까 시작했다 새끼 발가락이 아파 보기도, 발등에 보기 싫은 물집도 잔뜩 잡혀가면서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거겠지?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익숙해지고 편한해지는 내 쪼리로 신다가 닳고 닳아 이제는 버려야 할 때인가 싶을 때쯤 이별을 말하는 건가보다. 쪼리는 신발 중에서 값도 가장 싸고, 잘 구겨지고 손상이 잘 가기 때문에 금방 안녕을 고하고 싶지 않다면 쪼리를 아껴줘야 할 텐데. 편하다보니 너무 막 신어버렸나보다.
그래서 B에게 나 여기서 잘 기다릴테니 군대 기다려주는 여자친구 꽃신 신겨주는 것처럼 너가 신는 하얀 크록스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지비츠도 잔뜩 사와달라고. 이번에는 내 발을 아프게 하지 않아줬으면. 나도 너를 아낄테니 너도 나를 아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