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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승완 Aug 15. 2020

[인스타 동양철학] 공자는 전남친

내 공자님이 이렇게 구질할 리가 없어.


子曰,莫我知也夫. 子貢曰,何爲其莫知子也. 子曰,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논어 헌문편)

공자께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시니, 제자 자공이 왜 그런 것인지 물었다. 공자께서는 '나는 하늘과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나는 밑에서부터 시작해, 심오한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오직 하늘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새벽 1시다. 잠이 들까 말까 하는 그런 시간. 때아닌 진동 소리에 오려던 잠이 깬다. 그 사람이다. '자니...?'. 이 한마디에 담긴 함의는 넓고, 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아무런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혼자서도 잘 해낼 거야. 언젠가 그의 진가를 알아줄 사람이 그의 곁에도 올거야. 하지만 나는 아니야.'


  『논어』의 가장 첫 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들이 자신의 진가를 몰라줘도, 화내지 않아야 진짜 훌륭한 사람이 아니냐'라는 물음이다. 한 마디로 '남을 의식하지 마라'라는 이야기다. 눈여겨볼 사실은, 공자가 여러 차례 비슷한 말을 반복(「학이」 16장, 「이인」 14장, 「위령공」 18장)했다는 점이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어록을 모아 펴낸 책인데, 비슷한 내용임에도 굳이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다는 점과, 가장 처음에도 등장한다는 점을 보면, 실제로는 공자가 내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 공자의 카톡 상태 메시지였을 것이다.


  이번 장의 텍스트도 무척 재미있다. 딱딱한 문장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보자. 평소 남을 의식하지 말라던 공자쌤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며 솔직한 한탄을 내뱉었다. 아뿔싸, 근데 제자 자공이 그 말을 들어버린 게 아닌가? 제자에게 들키자, 황급히 말을 바꾸는 공자 선생님. '하하, 하늘은 날 알아주니까, 난 괜찮아!'. 정말로 공자쌤은 괜찮았을까?


  공자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알아주는 나라를 찾아 대륙을 떠돌았다. 이른바 '주유열국(周遊列國)'으로 불리는 역사적 사실이다. 분명히 공자는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 한탄하고 있었던 것임이 틀림없다. 그의 입버릇도 알 것 같다. 강한 부정은 긍정 아니던가?


  평소 '불선한 사람(나쁜 놈)한테는 가지 않는다'라던 공자가, '쿠데타'를 일으킨 공산불요(公山弗擾)의 초대장을 받고 갈팡질팡 했던 모습을 보면, 이런 심증은 거의 확신으로 바뀐다. 이를 제자 자로로부터 비판받자, 공자는 '그 사람을 착하게 만들면 된다'라는 식의 논법까지 쓴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결국 그에게 가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래도 공자는 '선(Good)은 지키는 사람'이다.


 어떤가? 전남친 처럼 구질구질해 보인다고? 공자가 저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인간적인 모습의 공자가 좋다. 공자는 근엄하고 진지한, '왕년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노땅(이 표현에 사과한다)의 모습'이 아니다. 다소 반전이겠지만, 우리는 공자가 '전남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자는 이 땅의 수많은 '전남친'들 처럼, 후회하고, 한탄하며, 그것을 애써 변명으로 숨기는, 그런 '보통 사람'이었다.


  덧붙여, 그림 속의 공자는 그 이후, 다시는 전 여친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진짜로 '하늘은 날 알아준다'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그는 '선(Line)은 지키는 남자'였다.



본 글은 2020년 2학기 영남대학교 도전학기제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인스타로 만나는 동양철학(가제)'의 한 부분입니다. 공식 인스타 계정(www.instagram.com/insta_dongyang)과 동시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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