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여의 근원 시리즈를 만든 순간 뭐를 써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사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 자명했지만 하면 할수록 내가 당한 것이 이것이라고 이야기만 하는 꼴이 된다. 세상사에 대해 분석하고 그에 대해 평가하는 글을 쓸 거라 생각하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결국 나의 가장 큰 상처를 말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세상보다는 나에 대해서 더 궁금했나보다. 나는 내가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뭐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상처들이 결여의 원인으로 보고 기록하기로 한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허물을 적는 것이 치료가 된다고 하는데 그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은 내가 상처 받았는지 모르고 있으니 이게 치료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다 엎어버리고 싶다.
내 가정의 실제 권력 구도와 관계없이 어린 나는 우리 집의 권력 구도를 언니가 왕이고 부모는 무력한 어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와 남동생은 그런 언니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니는 부모의 암묵적 허가를 받아서 그렇게 잔혹하게 굴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부모는 맞벌이를 했고 항상 바빴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시골에 있는 할머니에게 맡겨져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할머니집과 부모님집을 오가면서 자랐다. 언니는 부모님의 집에서 계속 자란 거 같은데 여수에 있는 이모의 집에 맡겨져서 자란 거 같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맡겨졌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의 부모는 매우 바쁜 사람들이었고 언니의 통제 아래서 나와 동생은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언니가 나한테 무엇을 하든 부모한테 말한 적이 없다. 부모한테 말하면 그것이 다시 언니의 귀에 들어가서 더 큰 보복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따르면 언니가 보복을 했을 시 다시 부모님한테 말해서 언니에게 동생을 괴롭히면 혼난다라는 인식을 줘서 괴롭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의 부모는 이런 쪽에서 전혀 신뢰를 쌓지 못했다. 나는 부모가 언니를 혼내서 괴롭힘을 멈춰서 나를 보호라 것을 기대하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의 가장 처음 기억에서도 나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당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기에 세세하게 말하기도 귀찮고 구차하다 생각해서 그냥 '언니가 좀 혼냈다', '사이가 좋지 않다' 이런 가벼운 말들로 넘겼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묘사한다고 해서 내 안의 어두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지금의 무난한 관계를 위해서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포장이 나한테 남은 건 뭘까? 나는 아직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가장 처음은 간단한 심부름이었다. 언니가 무엇을 사오라고 돈을 주면 사오면 되는 아주 간단한 과제였다. 나는 내것을 사지 않고 남의 것을 사기 위해 가게로 향했다. 나는 동생한테 심부름을 시킬 때 동생에게 돈을 주거나 동생이 먹을 것을 사러 간다고 말하면 내것도 사와달라고 하는 식인데 나는 그런 것도 없이 열심히도 했다. 언니의 물 심부름은 참 특이했다. 물은 항상 새 컵에 떠와야 한다고 말했다. 깔끔한 성격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새 컵이 없다면 컵을 새로 씻어서 언니에게 물을 가져다 줬다. 테이블에 있던 새컵은 안 되고 항상 싱크대 옆의 접시 말리개 위에 얹져 있는 새 컵을 원했다. 여행을 가서 가족들이 한 방에서 자야할 때 언니는 항상 내 자리를 자신의 옆으로 지정했다. 어릴 때만해도 부모 옆에서 자기 좋아했어서 그 옆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이런 기억들 때문에 지금 내 옆에 있는 게 좋다는 부모님들이 어색하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못했지만 부모님고 다가오지 않았으니 쌤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부모님이 다가올 때마다 어렸을 때 먼저 다가오지 왜 지금에서야 다가오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 다음은 본인이 먹기 싫은 거 떠넘기기였다. 제일 대표적으로 밥에 있는 콩과 계란 노른자였다. 어렸을 때 엄마와 할머니는 밥에 까만콩을 엄청 넣었다. 콩에 원수라도 지은 건지 모든 밥에는 콩이 들어갔고 물이 많아서 질척였다. 언니는 흰밥을 좋아했고 할머니와 함께 자란 나는 그냥 먹었다. {좋아해서 먹은 게 아니라 밥을 안 먹으면 더 먹을 게 없을 거 같아서 먹었다. 연년생인 동생과 같이 자라서 식탐이 매우 강했다. 제일 맛있고 좋은 것은 마지막에 먹으려고 해서 먹기 싫은 것부터 먹었는데 그러다가 뺏길까 그냥 먹는 속도를 늘려서 남들 하나 먹을 때 세 개를 먹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나한테 콩을 떠넘겨도 그냥 먹었다. 먹기 싫다고 말하거나 먹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계란 노른자 사건은 하도 강렬해서 아직도 생생하다. 언니는 계란 흰자는 좋아하지만 노른자는 싫어한다. 그렇다고 흰자만 먹고 노른자를 남기면 혼나니 노른자는 나한테 먹였다. 퍽퍽하고 맛대가리없는 노른자를 먹다가 화장실에서 토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노른자를 먹고 토했다만 떠오른다.
언니는 나를 통제했다. 그는 내가 티비를 보는 것을 싫어했는지 학교를 끝내고 돌아오면 내게 티비를 봤는지 물어봤다. 거기서 봤다고 말하면 무슨 반응이 나올지 몰라서 티비를 아예 보지 않고 만화책을 읽었다. 어렸을 때 책을 좋아한다고 어른들이 좋아했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티비를 보지 못하니 시간을 보내려고 책을 보고 그러다보니 책을 좋아한 거다. 언니는 내가 컴퓨터로 웹툰을 보는 것도 안 좋아했다. 자기는 웹툰 보면서 왜 나한테 웹툰을 보지 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학교 도서관 컴퓨터로 웹툰을 보거나 언니가 어디 간 사이 엄마의 핸드폰으로 웹툰을 봤었다. 부모님과 같이 안방에 있었고 언니는 다른 방에 있었지만 혹시 들킬까 이불을 덮고 봤었다. 그리고 내가 핸드폰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언니는 내 핸드폰의 문자 내역을 봤다. 피쳐폰을 썼을 때는 내가 친구가 없어서 문자 내역도 볼 게 없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중학교 때 핸드폰 검사는 재앙이었다. 처음으로 스마트폰이 생겨서 친구들과 카톡을 본격적으로 하려던 때에 그것까지도 봤으니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너무 슬프고 정신이 없었는데 그때 왜 언니가 내 핸드폰을 보는지도 모르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네이버 로맨스 웹소설을 본다고 뭐라 했다. 내가 보는 소설을 열어보고 뭐라고 한 거 같았는데 핸드폰을 본다는 충격이 커서 기억도 안 난다. 그 뒤로 웹소설은 화장실에서 숨어서 봤다. 그 이후 언니와 같은 방을 쓰기가 힘들어서 나는 남동생이 혼자 쓰던 방에 들어가 같이 쓰기 시작하고 잠도 그 방에서 잤다. 그 방은 화장실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언니는 밤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내 방문을 열어서 나를 감시했다. 내가 스마트폰을 하는지 안하는지 보는 거였고 나는 그거 때문에 발소리가 들리면 핸드폰을 숨기고 안경을 벗어 침대 아래 놓고 자는 척을 하는 스킬이 생겼다.
이런 일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언니 옆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가 집에 있으면 들어가지 않으려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언니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갔다. 당시 살던 집이 1층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거실쪽으로 난 창문은 키가 작은 나도 숙이면 거실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창문쪽으로 빙 돌아서 집에 티비가 켜져 있으면 언니가 있으니 밖에 있었고 꺼져 있으면 언니가 없는 거니 들어갔다. 내가 집에 들어갈 시간에 티비를 보는 건 언니밖에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삼형제라서 뒷자석에 빈자리 없이 나란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 옆에 앉고 싶지 않아서 동생이 가운데에 앉도록 차에 일부러 늦게 탔다. 교수인 엄마가 주말에 출근할 때 삼형제 중 하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연구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놀지 말고 연구실에 있으라는 의도였다. 언니는 연구실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지 안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나와 동생 둘 중 하나가 주말마다 그 연구실에 갔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연구실에 데려가길 빌었다.
이렇게 살다 언니가 고등학생이 된 순간 자유가 찾아왔다. 언니는 야자를 해야 해서 9시까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언니를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러고 언니가 대학생이 되고 내가 고등학생이 된 순간 자유로워졌다. 일 년에 한 두만 명절 때 만나니 가끔 언니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언니는 같이 밥을 먹을 때면 항상 본인이 계산하고 어디 놀러 나가면 맛있는 것을 사온다. 친절한 언니를 보면서 내가 어렸을 때 겪은 사람은 어디가고 저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아직 그 일들을 곱씹고 있는데 언니가 달라진 것이다. 이 원망들은 누구에게로 가야할까?
원망의 대상은 명확하게 정해져있다. 가장 큰 아이가 동생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묵인하고 눈을 감은 부모다. 저 일들이 있다고 해서 나는 언니만을 원망하고 악마로 만들지 않고 싶다. 나는 마음 한 켠으로 나의 부모는 이 일을 처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 부모와 가족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때는 부모가 무능력하다로만 결론짓고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했지만 지금은 내 부모는 대체 무엇을 했었는지에 대한 분노로 인내로 변형했다. 이건 명백하게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언니가 부모를 이긴다는 이상한 생각을 내 머리속에 심은 건 부모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을 털어놓기에는 시의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세남매는 성인이 되었고 언니는 친절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가식을 떨치고 나가기에는 나는 아직 무력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저 과거만 곱씹을 뿐이다. 언니에게서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부모님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벌써 그들은 과거를 벗어났고 현재, 미래로 향하는데 나만 과거를 복기하고 있다. 드라마처럼 사이다 결말을 내고 싶어도 나는 지금 우리 가족을 상대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지금 당장 부모님의 돈을 받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이해하지 못한 나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과거의 한 사건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원인을 잊어버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