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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셩 Jul 21. 2020

무기력과 회한의 해, 망상과 비현실의 계절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

계절의 흐름, 날씨 등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고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쯤

달력을 보면 어김없이 24절기가 다가오는 경우, 많다.


해마다 기운이 바뀐다.

명리학이나 동양의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마 잘 알 것인데,

올해는 경자년(庚子年), 금기운(金氣運)이 가득한 해,

그리고 금기운이 '태과(太過)' - 금기운이 분기탱천, 하늘까지 치솟을 만큼 넘치는 해다.


금기운은 음양오행 다섯가지 기운(= 힘, 에너지) 중

긴장시키고, 응축시켜 결과를 만들어내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기운이다.

계절로 따지면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수확으로 인해 풍요로우면서도, 

가을걷이 후 남겨진 허허벌판처럼 허무한 양면성이 있다. (모든 계절, 기운이 그렇다)

그래서 가을 되면 심리적으로 허무함을 느끼는, 가을 타는 사람들이 있는거다.


자연에 금기가 왕성하면, 금기운에 해당되는 작물이 잘 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 복숭아가 그렇게 풍년이라는데, 무관하지 않다.


반대로, 소우주 생명 안의 금기운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반발작용으로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금기운이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은 폐, 대장.

폐질환이 많이 생길 수 있는 해가 바로 올해다.

코로나19를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성 호흡기, 장질환이 유행하는 것이 사실 무관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이것을 천기라고도 하는데,

천기의 영향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도 미친다.


허무함, 무기력,

그리고 후회와 회한.

잡념, 번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나누어

의미를 만들어내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이 부족해지는 것.

잘 하고 있다, 의미부여나 동기부여가 잘 안된다.


거기에 축축 쳐지면서 실행력이 떨어지는 장마철까지 겹치니


축 늘어져 방바닥 긁으며

나는 왜 이럴까 우울해하고 슬퍼하게 된다.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향수, 그땐 그랬지, 그땐 좋았는데, 라떼는 말이야...


설마, 그래서 싹쓰리가 유행했으려나!

레트로, 뉴트로 등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트렌드도

금태과와 흐름을 같이하는 것 같다.


뭘 해도 허전하다. 기쁜 와중에 쓸쓸함이 도사린다.


헛살았나, 괜히 그랬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심각하면 다 의미없다, 죽고싶다 까지 간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철저히 자연의 영향을 받고 있는 중인 거다.


나 역시 봄까지는 심하지 않던

무기력함과 허무함을 여름이 오면서 극심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10년전의 금태과를 돌이켜보며, 그땐 어땠던가, 자꾸 되돌아보고, 자꾸 과거의 흔적을 들여다본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방바닥을 긁으며 고양이들과 뒹굴며 상념에 잠긴다.


건강한 반성으로 이어져

발전적인 생각으로 결론이 나거나 그런 결과물이 나오면 괜찮지만,

만약 계속 습관적으로 이러고 있다면, 그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하루 24시간 중 반 이상을 상념으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면

당장 지금 이 순간 벗어나야 한다.


결국 나는 현재를 살고 있다.

톨스토이는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라고 말했다. 또


"현재 안에서만 인간의 영혼에 자유로운 신성이 나타난다." 고도.


모든 생명은 '현재'를 산다.

현재 내 몸, 행동, 생각, 마음 말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생각을 제대로 해야지,

마음을 고쳐먹어야지,

우울해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되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은 결국 몸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행하는 실천 없는 생각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생각을 환기시킬 때 가장 효과적인 건

몸까지 함께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가서 잠시 휴식과 환기와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몸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여름에,

그래야 조금이라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올해같은 때에,

격리, 통제 속에 있어야 하니

경자년 올해가 어떻게 기본적으로 즐겁고 신날 수가 있겠는가.


이럴 때 할 수 있는건,

해야만 하는 건


몸을 쓰는 것이다.


운동으로 땀을 흘려도 좋고,

가볍게 산책하듯 걷는 것도 좋다.

그 중에서도 주변을 정리정돈 하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는 게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만약 어지러진 방에 드러누워

자꾸 과거를 그리워하고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일어나 이불부터 개어버리자.

빨아버려도 된다.

그리고 방이든, 책상이든, 책장이든,

내가 정리할 수 있는 곳을 조금씩 정리해보자.

서랍 한 칸이든, 늘 들고다니던 가방이든.


그 안에 현실이 있고, 나의 삶이 있다.

어떤 회한이나 망상으로도 기피할 수 없는 

지금 내가 숨쉬고 보고 듣고 느끼는, 바로 지금 현재의 내가.


몸을 쓰면 힘이 생긴다.

메말라가던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몸에 힘이 생겨야 마음상태가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진다.

같은 상황도 견딜 만해진다.

미뤄왔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작은 실천도 가능해진다.


그 어느 해보다도 허무함이 밀려오는 해일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그 어느 해보다도

의미있는 일을 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위기는 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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