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정주행을 시작하여 심각하게 구며들고.
주말 꽉 채워서 진도 맞춘 뒤 최종화는 제시간에 본방사수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결말땐 갑론을박(사실 대다수가 불만)이 심각했던
네이버 드라마 톡방이 이번에는 딱 반반으로 의견이 갈린다.
결말 너무 좋다는 사람과, 이게 뭐냐는 사람.
재미있다.
호불호가 있어보이지만
나는 보는 내내 속이 너무 시원했다.
미정이가 조금씩 해방될 때마다,
기정이가 사랑 앞에 솔직할 때마다,
구씨가 미정이 옆에서 잠시 편안할 때마다,
창희랑 현아가 불교방송 버금가는 말을 할 때마다
폐를 타고 산포시의 시원한 공기가 온 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30년 남짓 살면서 나름 쌓아온
인간관계, 인생사에 대한 생각을 드라마 속에서 그들이 대신 말해주더라.
추앙, 해방, 환대,
일상에서 쓰지 않지만
그 말을 씀으로써 갇히고 눌렸던 마음들이 퐁퐁 고개를 내밀어 터져나온다.
아, 맞아.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싶었어.
주면 받는 게 있어야 하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어.
단지 추앙하고 싶었고, 가득 채워지고 싶었어.
끌어야 될 유모차 안 끌고, 업어 키울 거란 말을 하고 싶었어.
개구리 터지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
애써 좋은 ㅇ야기 하지 않아도, 억지로 웃어보이지 않아도 되는.
너무너무 자연스러운.
이런 생각 하는 사람들, 꽤 되지 않을까?
이 드라마에 깊이 공감했던 사람들.
하루 하루, 어렵게 어렵게, 한 발 한 발 떼어가며 사는 삶.
사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고 있는 건데,
괜히 타인에게 내 인생 보여줘야 하는 수단들만 생겨나서
꼭 그정도 살아야 되는 것마냥
살고 있는 것마냥
있어보이게 포장해야 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게 된다.
자연스럽지 못했던 나에게.
불편했지, 그동안.
자연스럽게 좋아지고
자연스럽게 미워하다가
자연스럽게 더 사랑하게 되고
뭘 해야되고, 하지 말아야되는 당위에서 벗어나
그냥 자연스럽게.
그게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얼마나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깊이 느낀다.
이 드라마에는 대사가 많지 않다.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숨소리만으로 지나가는 장면들이 아주 많다.
그게 나를 숨 쉬게 만든다.
삶은 결국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큰 국면을 맞이하고
대단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 같은건
찰나일 뿐이다.
그 이후엔?
한발 한발, 어렵게 어렵게 걸어가는 수밖에.
하루 24시간 1440분 중 고작 5분, 설레는 시간을 애써 쌓아가면서.
추앙하고, 환대하면서.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 안이 가득 채워지고
해방되고
그러는 거겠지.
결국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한발 한발 어렵게 어렵게 사는 거다.
이 말이 너무 좋다.
삶은 원래 어려운거야. 쉬운 거 아니야. 마냥 웃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원래 그런거야.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더 추앙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환대해.
깊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다시 한 번 정주행 하고 있다.
생각나는 말들을 꼭 이곳에 정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