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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08. 2016

걸으며 배우는 뚜벅이여행자

(1) 광주 - 기차여행

# 0.출발


젊었을 때 즐거웠던 일들이 지금은 지루한 일이 될 수 있다. 

'처음'이 주는 설레임을 막고 있는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더 큰 자극에만 반응하게 되는 무감각해진 메마른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른스럽다는 포장지로 그렇게  나 스스로를 좁은 편견의 감옥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나에게 작은 사식이라도 넣어주는 행위가 이 여행을 떠나는 출발점이라면 너무 소소한 이유일까? 내 안의 편견에서 출소할 날을 꿈꾸며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보물 찾기를 시작해본다. 


이번 여정의 첫 목적지는 소울메이트 친구가 있는 전라도 광주이다. 

'우정'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가치를 담보로 무수히 나에게 대출을 해주던 친구 '도군'은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이제는 함께 걸을 기회를 잡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언제든지 환영해주는 도군의 변함없는 모습은 떠나려는 나에게 1순위 기착지로 쉼과 용기를 충전하는 곳이 되어준다. 

오랜만에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남쪽 세계로 달려간다. 



#1. 무궁화호의 로망


무궁화호는 생각보다 빠르고 부지런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둘기호, 통일호의 뒤를 이어갈 슬픈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오늘도 무궁화호는 무수한 역들을 정차하면서도 새마을호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달리고 있다. 

ktx는 바쁜 이들의 빠른 교통수단으로 양복 입은 사람들이 많이 탄다. 비즈니스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많이 난다. 이에 반해 무궁화호는 모든 연령대의 평범한 일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뒤섞여있다. 

학생, 군인, 아저씨, 아주머니, 어르신들의 모습을 통해 서민 생활 속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이 정확한 우리나라인데, 논산역에서 한 아주머니가 급하게 문을 두드린다. 이미 닫힌문이었고 이제 막 출발하려던 순간이라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기차는 매몰차게 출발하는 대신 문을 다시 열었다.

아주머니는 바로 탑승하시지 않고 멀리 오시는 '아부지'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손짓한다. 잠시 후 '아부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두 분은 무사히 탑승했다.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기관사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기관사의 마음은 출발시간을 놓쳐서 조급해졌을까? 무사히 탑승한 두 분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을까?

후자일 것 같다는 것이 무궁화호를 향한 나의 로망이다. ^^ 


#1-1. 다정한 풍경


대전을 지날 때 즈음 창밖 풍경, 차곡차곡 포개져있는 산의 모습이 신기하다.

새마을운동 때 똑같은 집을 지어 놓은 듯 어쩜 저리도 가지런할까.

수문을 연 댐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삼각김밥 같기도 하다. 

크고 거대한 산맥은 아닐지라도 함께 어깨동무하며 친밀하게 붙어있는 모습이 

우애가 좋은 형제들 같다.  

높고 뾰족한 외로운 산이 되기보다는 함께 오름직한 뒷산이 되는 것이 사회에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 경로변경


원래 이번 여행은 광주에서 친구와 하루를 보낸 후 군산의 섬에서 이틀을 보내려 했었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일기예보가 좋은 경상도로 여정을 급하게 변경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고 리서치했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었고, 모든 계획과 일정을 새로 짜야했다. 

여행에 있어서 날씨는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날씨가 중요한들 내가 애쓰고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와 나.

날씨를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야지..

나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여행이 이제야 그 이기적인 욕망에서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은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내가 바뀔 때에야 비로소 변화된 세상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만물들은 이미 그 이치를 깨닫고 꽃도, 나무도, 새도, 짐승도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그 안에 자신을 맞추고 변화시키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경로 변경을 하고 나서야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라도가 경상도로 바뀌고, 흐림이 맑음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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