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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군 Mar 20. 2016

태화강, 겨울과 봄 사이를 걷다.


헤어지려니 아쉬운 추위와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의 흔적들 속에서도 울산 태화강물은 흔들림 없이 흐르고 있다. '태화루'를 사이에 두고 구도시의 모습과 신도시의 모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외지인이 나같은 이에게만 멋지게 보이는 것일까? 

울산이라는 적지 않은 도시를 가르는 태화강 속에는 제법 큰 물고기도 다닐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공업도시이자, 가장 소득이 높은 도시로도 알려져 있으니 오염된 태화강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할 6등급의 수질을 2004년 이후 시민들과 함께 1등급의 청정하천으로 개선시킨 것은, 환경관련 수상의 영예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물려 줄 최고의 유산이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울산 앞바다의 수질까지 개선되었다고 하니, '울산'이라는 도시를 넘어 전 지구적 생태환경 치유의 일익을 감당했다라고 거창하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어쩌면 태화강공원이 편안하고 아름답고 신선한 이유가 겉으로 보이는 조경 때문이 아닌,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과 염원을 담은 자연의 생기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진다. 이 땅에 더 많은 태화강들이 생겨나서 3면의 바다를 통해 전 세계의 환경을 주름잡는 환경 선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 되는 날도 한 번 꿈꾸어 본다. 




태화강공원을 찾았다면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십리대밭'

태화강을 따라 십리에 걸쳐 대나무 밭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때 개발의 바람에 밀려 사라질 뻔 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지켜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십리대밭을 보고 있으면 이런 울산 시민들의 대쪽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역사가 말해주듯 개발도상국들의 큰 도전은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대로 이어져 온 중요한 유산을 쉽게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인위적으로 소실된 유적과 유물과 자연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기에 십리대밭을 통해 우리가 지켜낸 것이 얼마나 위대한 선택이었는지 더 많은 이들이 배울 수 있는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십리대밭'속을 걷고 있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살을 부비대며 속삭이는 대나무들의 소리 때문에 자꾸만 가던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눈을 감고 가만히 온 몸의 감각세포들을 풀어 놓으니,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밀려든다. 마치 내가 무림의 고수가 된 냥 대나무 꼭대기로 날아올라 현란한 무술을 뽐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에 입가에는 엷은 고수의 미소가 피어난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곳, '십리대밭'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해주는 도심 속 맑은 공원을 가진, 아니 지켜낸 울산이 다르게 보인다. 

자연과 사람, 구도시와 신도시가 제법 잘 어우러지는 곳, 태화강.

겨울도 봄도 아닌 오늘, 이 길을 걷는 나에게 선물같은 감사와 행복이 슬쩍 주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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